가전업계가 "정보화"와 "멀티미디어"를 축으로 대대적인 구조재편에
들어갔다.

전자산업의 왕좌자리를 "반도체"에 물려준 가전산업이 지난 시절 누려왔던
영예를 다시 찾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가전산업의 21세기는 이미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가전업계가 처해 있는 주변 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등 전통가전은 가구당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내수시장 자체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신규 수요보다는 대체 수요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수출여건도 호전되지 않고 있다.

블록경제를 앞세운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는 시장 자체를 축소시키고
있으며 미국 유럽 등의 통상압력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수입개방으로 국내 시장은 외국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아무런 보호막
이 없는 상태다.

이제는 그야말로 상품의 질과 서비스로 승부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더구나 전통가전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반면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개인휴대단말기(PDA), 쌍방향 TV 등 이른바
멀티미디어제품군의 비중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가전업계로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변신이 불가피하다.

그 변신의 축은 "정보화"와 "멀티미디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제품군도 변신을 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씻고 꿈의 멀티미디어로 탈바꿈하고 있는 TV는
<>인터넷TV <>쌍방향 TV 등으로 세포분열을 거듭하면서 멀티미디어로 가는
길목을 선점코자 하고 있다.

일본 노무라 연구소는 최근 21세기에 생존할 수 있는 전자업체는 전세계적
으로 5개 안팎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라 연구소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세계 가전업계의 구조개편은 시작됐다
고 보는게 옳다.

미국의 자존심 제니스가 한국의 LG전자에 넘어 왔으며 유럽 2위의 가전업체
톰슨은 누적적자로 파산상태에 빠져 새주인을 찾는 비참한 처지에 빠졌다.

국내에서 가전 3사가 정립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이같은 구조도
언제까지 지속되리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가전의 미래가 멀티미디어화에 달려 있지만 그 앞날이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다.

과거 한국의 가전업계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는 것
만으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를 밝혀줄 하이테크 제품들로 들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각종 특허와 선진국의 기술이전 기피 등으로 독자기술을 갖지 않고선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엔저로 가전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금세 수출부진에 시달리는
취약한 구조만으론 더이상 안정적 사업구조를 지탱해 나가기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내수시장을 지키는 것조차 어렵게 되고 있다.

유통시장 개방은 국내 보호막을 완전히 걷었기 때문이다.

가전사들은 물론 각종 자구책을 세우고 있다.

대리점 경쟁력 강화는 이같은 정책의 초점이다.

LG전자는 "경쟁력 있는 대리점"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기본 방침하에
"집중과 선택"을 실천하고 있다.

또 최근엔 부.차장급 30명으로 구성된 "영업전략 연구소"를 개설, 대리점
종합 지원체제를 구축했다.

영업현장에서 갈고 닦은 풍부한 경험을 밑천으로 보다 실질적으로 대리점과
일반 영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LG전자는 50평 규모의 중대형 대리점을 "전략점"으로 육성해 한 매장에
PC 가전 멀티미디어 등은 물론 생활 편의용품까지 판매하는 "원스톱 쇼핑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아울러 소비자들이 CD-I, 와이드 TV등 전자제품을 직접 실연해 보고 살 수
있도록 유원지 사찰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특수대형버스를 이용해
전국순회 하이미디어로드쇼를 실시중이다.

대우전자는 해피콜 제도와 고객 엽서를 통한 고객의견 듣기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대리점 신육성 프로그램인 "석세스 97"을 통해
지역상권에 뿌리내리는 대리점을 모토로 세웠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59년 진공관식 라디오가 선보이면서 태동해 이제 국내
총수출의 35%를 차지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가전산업은 국내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국내 가전산업이 이같은 선전을 할지는
미지수다.

그 미래는 전적으로 가전업계 스스로의 어깨에 달려 있다.

<김낙훈.이의철.김주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