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마니아는 항상 소수다.

임상순씨(26)는 자신이 그 대열에 낄 수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러나 삼성데이타시스템(SDS)에서 그를 아는 동료들은 그가 음악과
영화 컴퓨터에 미쳐있는 "신세대 마니아"라는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사람들이 임씨를 음악광으로 꼽는 첫번째 이유.

그는 음악에 미쳐 "죽을 뻔"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임씨는 90년 한양대수학과 2학년에 올라가면서 영양실조로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이유는 점심을 일년 가까이 굶었기 때문이다.

그가 점심을 거를만한 빈한한 처지였던 것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1년가까이 점심을 굶고 그 돈으로 CD를 샀기 때문이다.

그는 록음악에 미쳐 새로 나온 CD를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의 이런 딱한 사정을 뒤늦게 안 집안식구들은 2학년때부터 용돈도
배로 올려주고 보약도 해먹였다.

그때부터 그는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아르바이트와 절약을 통해
모은 돈으로 틈틈이 CD를 구입, 현재 1천장이 넘는 보유고를 자랑하게
되었다.

두번째 그가 영화광이라 불리는 이유.

사람들은 "터미네이터 I"을 보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 보통
농담조로 흘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임상순씨가 이렇게 말할 때 웃으면 안된다.

임씨의 영화에 대한 진지함과 학구적인 열정이 터미네이터의 상업성을
벤허의 예술성과 같은 레벨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는 야근이 잦은 지금도 주당1편의 영화관람은 거르지 않는다.

세번째 그가 컴퓨터광인 이유는 컴퓨터 자체가 바로 그의 생활이기 때문.

"애피C-1000"부터 시작한 그의 컴퓨터 경력은 대학입학과 함께 꽃을
피웠다.

음악과 영화를 뺀 나머지 시간은 프로그래밍과 통신에 쏟아부었다.

자연 수학이 전공이면서도 컴퓨터와 친숙해지게 되었고 직업도
유닉스컴퓨터관리분야를 맡게 되었다.

임씨는 최근 새로운 일에 미쳐있다.

그것은 아직도 미개척분야나 다름없는 국내 데이터베이스(DB)분야를
개척하는 것.

그는 "이일을 시작하면서 국내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새로운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기질이 기어코 이 분야에 목숨을
걸게 만들 것"이라며 마니아다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 박수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