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한양대 교수 / 경제학>

국회에서 노동법 재개정을 앞두고 개별기업의 임금교섭이 지연되고
있다.

노총의 임금전략은 발표되었으나 경총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도 지연사유의 하나다.

더욱이 단체교섭의 경우 향후 노동법재개정의 방향을 보고 교섭에
임해야 되는 것이 기업의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서 삼성그룹은 지난 24일 노동법 재개정내용과 관계없이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을 실시하지 않기로 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전계열사 과장급이상의 임금을 동결하고 사원의 경우
3% 이내에서 임금인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신규수당 신설 등 편법에 의한 변칙적인 임금인상 금지,
복지후생비 동결, 노사공동으로 생산성향상 및 과소비추방운동 등 건전생활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것이 올해 삼성그룹의 임금전략이다.

이같은 임금전략은 "총액 인건비관리제"라고 볼수 있다.

즉 과거에는 임금인상률을 먼저 결정했으나, 이 제도는 회사가 부담하는
인건비 총액예산을 미리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그룹이 이와같이 임금정책을 수립한 것은 향후 올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임금동향에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근년에 들어 정부가 임금안정화 정책을 실시하자 기업들은 상여금
등의 변칙적 인상과 근로시간의 단축, 생산직의 월급제 등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업의 인건비부담이 급증하였다.

또한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상태에서 사실상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근로자들의 복지를 전담하다시피 하여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한 경우
기업의 총인건비지출을 노동생산성과 대비해 볼 때 그 격차가 너무
컷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의 투자의욕이 위축되고 해외로의 공장 이전을
선호하여 제조업 공동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총액인건비의
관리는 이제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우리나라의 임금교섭행태를 보면 동종업종의 임금선도주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시되어왔다.

임금선도기업이 높은 임금수준에 임금협상을 타결하면 그 후 동종업체에서
이와 유사한 수준 또는 다소 높은 수준에서 임금을 타결해 왔기 때문에
임금선도기업들은 갖가지 명목의 복지후생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왔다.

임금의 안정화나 임금지급체계의 개선 등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고양이 목에 먼저 방울을 다는 것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임금선도기업의 하나인 삼성그룹이 총액인건비관리제
실시라는 용단을 내린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건비"는 동남아의 네마리 용중에서 가장 높다.

물론 고임금-고생산성을 추구할 수만 있다면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제품의 품질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점을 싱가포르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싱가포르가 고임금-고기술-고생산성 전략에 실패하자 임금개혁을 시도한
것이라든지, 일본의 경쟁력있는 소형자동차의 경우에도 가격경쟁력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점 등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그동안 임금관리측면이 소홀히 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임금교섭과정에서 파업이 두려워 노조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하는
관행이 보편화되어 왔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의 임금인상분 중 베이스 업(즉 교섭인상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87%나 되며,나머지 13%의 승급분도 대부분 정기적
비고과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교섭인상분의 비중이 55%에 불과하고 승급도 대부분
고과에 근거하고 있다.

즉 우리 근로자들의 임금은 노조의 교섭력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고
나머지 승급분도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인상되는 등 임금-업무수행능
력 간의 연계성이 결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기업은 임금관리를 한 것이 아니라 임금지급에만 급급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경기가 나쁘고 고용불안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임금관리를
통해 고용안정을 보장하겠다는 것은 전향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이 안정되어야 애사심도 생기고 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으며, 이는
설비투자의 증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생애임금을 극대화하는
순순환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기업문화를 고려해 볼때 직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생산성
제고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택한 전략은 수요부진에 대응하여, 해고 등 고용조정 방식
보다는 임금조정방식을 선택하여 종업원의 동기유발을 통한 생산성향상을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올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매우 불투명하고 따라서 임금교섭의 난항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임금선도주자의 하나인 삼성그룹의 임금전략이 경제의
안정과 국가경쟁력강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