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과 서양인의 만남에 있어서 가장 민간하게 작용하는 것은 냄새의
영역이다.

죽자사자 사랑해서 국제 결혼을 한 부부들이 이혼할 때 냄새를 이혼사유로
들 때가 많다.

좋을 때는 별게다 좋다가 싫어지면 별게 다 싫은 법일까?물론 타협할
수 없는 여러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을 속에 감춘 채 냄새라는 말초적
이미지의 표현으로 상징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제적 성격적으로 맞지 않거나 배우자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종 김치 냄새를 참을 수 없다거나 치즈 냄새가
끔직하다고 이야기한다.

향수란 그렇게 서로 참을 수 없는 이질적인 냄새의 영역에 화해의 빗금친
부분을 만들어주는 인간의 아름다운 발명품이다.

아주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의 모 미술관에 초대된 우리나라의 젊은 설치
예술가의 작품이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그 일부를 철거당한 일이
생겼다.

작가는 "이것은 한국은 무시한 행위이다"라고 확대 해석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대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것은 "독립 운동"이나 "인종 차별"처럼 심각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단순한 냄새의 영역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이 아무리 예술이라 해도 전시된 공간이 규격과 틀을 갖춘
미술관이라고할 때, 생선 썩는 냄새란 일종의 심각한 방해 요소가 될수있다.

더구나 그 커다란 미술관의 아주작은 방 하나를 차지하는 전시로 인해
다른 전시들을 관람하는 데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아주 단순한 예의의
문제일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 세계화란 이렇게 단순하고 얄팍하기조차 한 매너의 문제로 시작된다.

그러나 생선 썩는 냄새가 작가에게 있어 굳이 의미있는 부분이라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정말 엉뚱하게도 문득 이 일과는 아무 관련 없이 김치냄새가 난다고
구박한다던 친구의 옛미국인남편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