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0시5분전이다.

그는 김영신과의 만남을 최고로 이용하기 위해 단단한 예행연습을 한다.

이제 공박사와의 약속을 지키고 자기의 몸을 소중히 다루기 위해서는
김영신 사장 같은 멋쟁이를 잘 잡아 둬야 한다.

침대만 밝히는 여자는 이제 아디오다.

그는 아직 벤츠 580을 타는 굉장한 여사장님과 사귄 일이 없다.

세상 여자들이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벤츠냐? 비엠더블류냐? 푸조냐?
재규어인가? 페라리인가? 얼마짜리 고급차를 타는가가 언제나 그녀의 재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금 때문에 국산차를 탄다고 엄살을 아무리 떨어도 그것은 거짓말이다.

"정말 돈이 있는 아줌마들은 쩨를 타고 다니더라"

그것이 제비생활 몇년에 그가 터득한 상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일 처음 아줌마들을 만나면, "무슨 차를 타시죠?" 하고
애교있게 묻는다.

그리고 국산차를 타는 아줌마에겐, "애국자시군요" 하고 존경의 눈초리를
보낸후 속으로는 입맛을 잃는다.

벤츠도 300시리즈 이상을 타야 가슴이 끓어 오르고 호시탐탐 눈빛을
빛내며 애교를 살살 떤다.

친정 남동생에게 디스코에서 들켜 끌려간 권옥경과 헤어질 때 그는 제일
많이 울었다.

"누님, 누님이 정말 보고싶어 나 미치겠어. 누나가 타던 차라도 주고
가요. 누나의 향기라도 좀 맡게"

그리고 사실 그는 권옥경이 가끔 남편 몰래 삐삐를 치고 만나자고 하면
열 일을 제치고 러브호텔로 달려가서 한바탕 울면서 섹스를 하고, 그리고
입술이 터지게 입을 맞추고 성춘향 이도령처럼 눈물로 헤어지곤 한다.

그것이 1년에 몇번씩이나 계속되었다.

권옥경은 30대 후반의 나이였고 또 최초로 바람을 피운 샛 서방이었으므로
둘이 도망가자고 까지 했지만 엄한 친정 부모들의 만류로 그냥 저냥 체면
유지를 하고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권옥경이 친정 아버지에게 벤츠 400시리즈를 받고 자기차를
친구에게 판 것으로 한 것은 지영웅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맹세의 표시였다.

권옥경은 아버지가 깡패들을 사서 반쯤 죽인다는 공갈을 해왔던 사건까지
무지무지 사건이 많았던 여자였다.

아무튼 그는 그녀 때문에 벤츠의 값만큼 뜨거운 눈물을 흘려줬다.

그는 권옥경을 상대하던 그런 마음가짐으로 김영신사장을 상대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포옹을 한 채로 실컷 울 수 있는 여자, 울면 그만한 대가가 나오는 여자로
그는 지금 김영신에게 큰 기대를 건다.

돈이 없는 여자는 쓰고 싶어도 못 쓴다는 진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김영신이 제발 자기를 마음에 썩 들어 하기를 은근히 부처님께 빈다.

그는 돈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줌마들을 만날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부처님, 정말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복권을 안 주시려면 대어를
내려주소서"

그는 항상 부처님에게 애교를 살살 떨며 빌고 또 빌면서 산다.

그는 10시 정각에 어깨를 쓱 펴고 선선하고 멋있는 패션모델의
걸음걸이로 김영신사장 앞으로 걸어간다.

"걸음걸이가 좋은 남자"

어쩌고 하던 김사장의 말이 떠올라서 였다.

그의 걸음걸이는 정말 물찬 제비처럼 날렵하다.

"안녕하세요? 김사장님!"

지영웅의 얼굴이 백합꽃처럼 활짝 피어 오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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