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는 여자"는 최근 소설로서 뿐아니라 연극무대에까지 올려져
화제를 낳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나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나는 "담배 피우던 여자"다.

내가 담배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94년.

회사내에서 본격적인 "금연" 운동이 벌어지면서 부터였다.

사보의 특집주제로 "금연"이 채택된 것이다.

사보 담당기자였던 나는 담배에 대한 모든 것을 새로 공부해 나가야 했다.

그때까지 담배에 대한 기억이라곤 어릴적 호기심에 아버지 담배갑에서
몰래 꺼내 물어보던 일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담배라면 그저 TV에서 멋진 배우나 노랑머리 팔등신 미녀들의 악세서리
정도로만 여겼을 정도였다.

우선 담배가 왜 인체에 유해한지에 대한 대대적인 학습을 시작했다.

간암수술을 담은 비디오를 비롯 흡연으로 손상된 폐에 대한 책자까지
꼼꼼이 훑었다.

끔찍한 비디오 장면도 몇번씩 돌려보가 보기에도 징그런 폐 사진을 오리는
것 까지는 좋았다.

팀내에서 소극적인 홍보가 아닌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고 금연장면을 시간의 추이에 따라 연출사진으로 찍어보자는 아이디어
가 채택됐다.

사진의 주제는 한때 "옥슨80"이 불러 유행시킨 노래제목 "싫어. 그대의
담배연기".

모델을 구해야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우리 부서의 "골초" 초성진 대리님(당시)을 꼬셨다.

모델료로는 담배 5갑을 주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담배연기가 맘처럼 쉽게 카메라에 잡혀주질 않았다.

"3개피를 한꺼번에 피워볼까"

"아니야 담배연기가 별론데"

"5개피, 아니 10개피"

"한번만 더"

"한번만 더"...

결국 미흡한 대로 담배연기를 찍는데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다.

촬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우리 대리님.

그만 풀썩 자리에 스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담배연기 과다 흡입으로 인한 혈증 산소 부족및 니코틴 과다 증세.

흡연실 문을 열고 넥타이를 풀고 산소호흡을 시키고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시는 차대리님.

애처롭긴 했지만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법.

아직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대리님을 의무실에 홀로 모셔둔채 우리의
촬영은 계속됐다.

이번엔 여성 흡연에 대한 자료사진이었다.

역시 모델이 문제였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신입사원의 용감한 배짱으로 내가 나섰다.

"뒷모습 촬영이라는데 시늉만 하면 되겠지"하고 생각했다.

무난히 촬영을 마쳤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유난히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몰랐다.

집에 도착해보니 문을 열어주는 어머니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잠깐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오는데 어머니의 불호령이 덜어졌다.

"당장 짐 싸거라"

촬영하는 동안 워낙 담배냄세가 몸에 심하게 뱄던 것이다.

사보를 위해 워낙 열심히 공부했던 덕에 나는 이제 담배의 역사며 옛날담배
이름이며 담배와 관련한 이야기는 줄줄 꿰고 있다.

담배특집 직후에는 음주특집이 있었기 때문에 술에 대한 얘기는 자다가도
욀 정도다.

얼마나 좋은가.

남 못지 않은 술 실력에 빼어난 미모(?).

이에 더해서 담배와 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까지 갖추었으니.

회사는 나를 "밤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이주희 < 삼성전기 홍보실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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