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등소평에게는 끝내 이루지 못한 한가지 염원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홍콩 땅에 단 1분이라도 서있을 수만 있다면
만족하겠다"고 가족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 홍콩을 되돌려받기 불과 4개월여를 앞두고 등소평은 지난 19일
사망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그토록 홍콩에 집착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국의 경제개혁과 개방을 직접 설계하고 지휘했던
장본인으로서 홍콩이 갖는 개방경제의 활력과 상징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홍콩에 대한 등의 각별했던 관심은 곧 포스트등 시대에 중국이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중 경제문제가 핵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지난 16년동안 비교적 착실하게 다져온 시장경제체제가 등의
사망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당장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대외 개방정책등 지금까지의 경제기조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전망은 등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권력기반을 굳힌 강택민주석의
지도체제가 당분간 안정국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특히 93년부터 시작된 주용기 부총리의 경제개혁은 실험기를 거쳐 이제
정착기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등의 사망이 곧바로 경제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집권층내 보수-개혁파간에 권력투쟁이 불붙는다면 중국 경제는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면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방 이후 더욱 심화된 빈부격차, 재정적자의 가중 요인인 국영기업문제,
많이 잡히긴 했지만 아직도 불안한 물가, 경제구조개혁 과정에서 파생된
실업문제 등이 중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 중앙과 지방 정부간의 갈등, 군부의 동향, 부정부패의 만연등 수많은
불안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등이라는 카리스마가 사라짐에 따라 언제 어떤 형태로
폭발할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등의 사후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러한 우려 때문이다.

등의 사망은 특히 한반도 정세에 중요한 변수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중국의 대외 정책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중국간 "혈맹관계"는 혁명 1세대의 퇴진과 함께
엷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중 관계가 실리적 차원으로 객관화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한-중
관계에서 북한요인을 배제시키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해 우리에게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중국정부나 한국정부나 등의 사망에 충분히 대비해온 만큼 앞으로 양국
관계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한-중 관계가 등의 사망을 계기로 명분보다는 실리 위주의 협력
파트너 관계로 더한층 발전돼 나가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