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언제부터 너 그렇게 잘 났어? 정말 잘 났어! 사실 너만해도 내가
오피스텔 그만한거 장만하게 해줬으면 함부로 입놀리지 말구! 시끄러.

인석이 누구 망하는것 보구싶다 이거야? 까불지 말구 무서우면 너나 빠져.

남의 장사밑천에 찬물 엎지말구"

"알았수, 형님. 그 애는 보건소에서 검사받은 증명 갖구 있겠죠? 형님
미안해유. 나는 가끔 좀 못난짓 해유. 잘 봐주슈. 내가 형님 신세 모르면
개새끼유. 다음번에 만날때 구치시계 한개 선물할게유. 오늘은 진짜
미안해유"

"가짜 구치는 안 받아. 준다니 고맙지만, 우리같은 늙은이야 언제 그런
쩨 주는 숙녀 있나? 나는 니가 부럽다. 넌 그럼 금요일밤에는 무얼 할거냐?"

구치시계 때문인지 몰라도 소대가리형님의 음성은 다시 봄날의 햇볕처럼
따스해진다.

소대가리형님이 이 세계에서 명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못 생겼지만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서 젊은 애들을 잘 관리하고 유대를 원만히 하고
있어서였다.

소대가리에게 박사장은 상당한 브이아이피 손님이다.

크리스마스선물을 챙겨주는 손님이다.

소형은 오늘도 맘씨 좋은 형님답게 많이 나무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값나가는 콜보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너그럽게 굴었다.

한마디로 인품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영웅의 판단이고 늙거나 황금기가 지난 콜보이들에겐
그도 상당히 냉혹하다.

모두가 돈의 파도속에서 적당히 돈의 노리개로서 기생하는 부평초들이다.

부자동네의 쓰레기들이다.

"형님, 저는 당분간 몸이 안 좋아 쉬려고 해요. 사실 저는요, 제가
아르바이트하는 그 일 자체가 적성에 안 맞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약 좀 먹어야 쓰겄어요. 병원에 다니고 있거든요. 간장이 나쁘데요"

지영웅의 말에 은근히 질리는 것은 소대가리다.

돈줄 하나가 휴업을 하면 자기의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다.

지코치야말로 자기에게는 첫째 손가락을 꼽는 현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코치는 외모도 좋고, 프레시한 아이라고 말해도 모두 백퍼센트
믿어주는 화사하고 멋있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기쁨조 리스트의 제일 앞자리에 적혀 있는 애다.

지영웅은 소대가리에게 연막을 뿌린다.

"형님, 사실 저같은 놈이 쉬면 얼마나 쉬겠수? 간장병이나 회복하고
서서히 다시 또 시작해야지유"

"임마, 너는 술도 안 마시지 않아?"

"왜유, 안 마신다 해도 기분상 자꾸 받아 마시다보면 어디 마음대로
돼유? 추풍낙엽같은 팔자지유"

사실 지코치는 술을 입에 안 대는 것으로 유명했다.

몸에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안 하는 이기적인 놈이 바로 그다.

그러나 그는 감정적인 놈이었으므로 혼자서 가끔 폭음을 했다.

파텍 손목시계를 흘끔 보다가 지영웅은 9시에서도 20분이나 지나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형님, 그럼 또 걸게유. 어디서 오는데 이렇게 못 오고 있죠?"

"몰라. 나두 잠실 어디엔가 산다는 것만 알아. 곧 갈테니 너무 초조해
말어. 오늘은 특별 화대라고 했으니 곧 나타날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