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노동법 재개정작업에 착수한 것과 때를 같이해 발표된 경제5단체의
공동성명은 원만한 개정작업에 도움이 될 신축성과 더불어 흔들려서는 안될
몇가지 중요한 원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계는 그동안 "절대불가" 방침을 고수해왔던 복수노조문제에 대해 "산업
현실을 감안한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는 선으로 한발짝 물러섰다.

대신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금지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무노동-무임금원칙의 법제화를 촉구했다.

노동계가 오는 24일 4단계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는가 하면
재계의 대책모임이 빈번해지는 등 노동법재개정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는 재논의 과정에서 변질돼서는 안될 법개정의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몇가지 쟁점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 재계가 가장큰 걸림돌인 복수노조문제에서 유연성을 보인 것은
법재개정과 관련한 정부 여당의 부담을 덜어주고 노동계와의 화합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 높이 평가한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법개정작업 자체가 또 다시 파행을
면치 못할 뿐더러 노사대립에 따른 경제위기의 장기화를 피할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다만 복수노조의 법적 허용에는 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있는
안전장치들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둔다.

둘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는 복수노조허용과 동시에 시행돼야
마땅하다.

새노동법에는 지급금지에 5년간 유예를 두는 것으로 돼있으나 복수노조가
합법화될 경우 이는 즉각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급 노동단체간부의 월급까지도 소속회사에서 지급하는
것이 관행화 돼있으나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것이 노동법개정의 근본취지가 아닌가.

또 전임자임금지급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에도 정면 위배된다.

당장 금지가 만약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유예기간을 최대한 앞당기는
방법도 검토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셋째 정리해고제의 법제화는 탄력적인 고용제도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늦춰져서는 안될 과제이다.

정리해고는 법제화만 안됐을 뿐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경제현실이며
판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정리해고"라는 용어의 어감이 안좋아서 그렇지 이 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노동위원회의 승인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어 사실상 노사합의가 아니면 해고를
못하게 된다.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성확보가 노동법개정의 중요한
취지중 하나일진대 이 제도의 법제화는 법개정의 기본정신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국회는 지금 지난연말에 통과시킨 새노동법을 시행해보지도 못한채
"외압"에 밀려 이를 재논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에 좌우될 위험성이 크다.

국회는 이와같은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국민경제의 현실과 장래를
깊이 통찰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