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어떤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난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면에서 난국인가"라고 다시 묻는다면 성장률하락이나 부도
증가, 실업률 상승, 국제수지적자폭 확대와 외채증가, 인플레 압박,
외국에서의 차입조건악화 등 다양하게 대답한다.

또 기업인들은 경영환경이 나쁘다는 점을, 노조지도자들은 노동관계법의
문제점을, 일반 근로자들은 신변의 위협을, 일반인들은 도대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 배냐라고 방향감 상실을 강조할 것이다.

오랫동안 누적된 부실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한보사태로 많은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부응할만한
경영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대형 은행경영진의 운명이 사정바람 때문에 종잡을 수 없는 상태에 있는
데다 한보그룹의 부도를 계기로 "신용대출=뇌물수취"라는 등식으로 금융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한껏 움츠리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의욕은 낮은 채산성, 증폭되는 미래의 불확실성에다 연쇄
부도위험까지 가세하니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고, 소비심리쇠퇴로 매출도
대폭 감소한다.

여기에다 해외금융기관들도 한국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자금공여조건을 까다롭게 하니, 외환에 대한 가수요가 더욱 증대한다.

이같은 악순환 과정은 앞으로 만일 남북한관계나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무리한 사태가 벌어지면 더빠른 악화의 길로 들어설 위험이 있는게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경제난국에의 순환고리를 차단하는 일이다.

그 핵심은 "상호신용 회복"이고 "책임지는 세력의 등장"이다.

경제난국해결의 과도기에 맞이할 가장 골치아픈 문제중의 하나는 실업률
상승이다.

사실 경기순환국면을 보나, 개방화 기술혁신 정보화 수요의 고급화추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력절약추세와 산업구조조정이라는 측면을 보나, 또
성장잠재력 감퇴라는 측면을 보나 실업률은 한층 더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작년의 경우 7% 성장하면서 실업률을 2%수준으로 유지하느라 국제수지
적자가 2백30억달러라는 사상최고치를 경신했고, 코어 인플레이션이 6%
가까이 올라가는 큰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동안 과잉고용을 뒷받침해주던 기업형태, 즉 외형적 시장점유율 확대
전략이나 밀어내기 수출풍조가 쇠퇴하고 이제는 재고조정-생산조정 단계에
있지만 다음단계는 고용조정일 수밖에 없다는 조정단계론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결국 우리경제는 경기회복에 따른 실업률 하락기대와 구조조정 등과
관련된 구조적 실업증가중 어느 쪽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따라 실업률과
실업구성이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생산요소시장측면에서 획기적 개선조치(구조변화 행태변화)를
취하지 않으면서 현재처럼 기업들에 경기하락의 부담을 씌우거나 적당히
경기를 부양하면서 지나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주로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 수출위주의 대기업
중 일부가 도산을 하거나 아니면 많은 자금방출로 인해 인플레가 심한
상황을 맞게 된다.

국제수지 적자때문에 외채는 누적되면서 원화가치는 절하될 것이다.

원화의 평가절하는 곧 외국통화표시의 임금 금융비용 물류비용 등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국민소득이 외국화폐 표시로는 지금보다도
낮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인플레와 엄청난 외채상환부담은 남아있고, 산업구조의 고도화에는
실패하기 때문에 몇년 뒤의 한국경제모습은 계속 미래가 없다.

다른 하나는 지금 안정기조 정책속에서 저성장의 부담을 정부세출삭감,
대기업들이나 금융기관의 총액임금상승억제 등의 방법을 통해 분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내수기업들은 일부 도산하겠지만, 만일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국영기업들이 경영합리화나 임금상승억제에 성공한다면 하청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에게 부담을 지워서 생기는 무더기 도산은 피할 수 있다.

일정기간동안 국민소득은 별로 늘어나지 않지만 외채도 줄어들고
한국에서의 기업환경이 개선되면 외국자본도 들어오면서 환율은 절상된다.

그만큼 외화표시 국민소득이 늘어날 것이다.

이 경우 비록 실업률이나 국민소득수준이 앞의 경우와 비슷하더라도 국민
각자의 생산성은 올라가있고 물가는 안정되며 산업구조는 고도화되어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아 경제난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실업률의 상승은
불가피하다.

다만 일정기간후 어떤 모습의 경제상황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실업자의
구성(연령별 기업규모별 업종별 내국인이냐 외국인이냐)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사회의 선택이다.

기업환경의 개선없이는 국내투자의 증가는 없고 성장의 지속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이 경우 고용수준의 안정은 물론 꿈일 뿐이다.

그러므로 실업률의 상승을 막는 가장 핵심정책이라면 "기업하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고 여기에는 규제완화, 공공기구축소와 경영합리화
민주화, 정책의 일관성과 미래예측가능성, 금융기관의 주인찾아주기와
중앙은행의 독립, 기술과 지식 등 공급기반강화(즉 교육 의료 사법 등 인적
자본 형성) 등이 빨리 잘 될수록 실업자는 덜 생길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그밖에도 구인과 구직에 관련된 고용정보, 시장체제의 효율적 운영과
차분한 구조조정과정에서 많은 인력들이 미래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근로자와 기업경영자들이 같이 노력하는게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