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는 환상의 무대다.

잠자리 날개같은 멋진 옷을 입은 팔등신 미인들이 음악에 맞춰 멋진
무대위를 물처럼, 바람처럼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누가 저렇게 멋진
일들을 만들까"하는 궁금증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멋진 패션쇼를 만들어 내는 이벤트회사는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기획실, 전속모델들을 관리하는 모델 매니지먼트부, 광고및
카탈로그제작등을 담당하는 캐스팅사업부, 행사를 제작.진행하는
제작부, 신인모델을 발굴.교육하는 모델아카데미사업부, 매체관리를
하는 홍보부, 회사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점검하는 관리부로
구성돼 있다.

그중 패션쇼기획자는 환상적인 패션쇼를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행사의뢰인인 의류회사나 디자이너들의 행사예산과 컨셉트에 맞춰
패션쇼의 기획의도를 잡고 구체적인 행사구성 진행안을 작성, 의뢰인에게
제시한다.

의뢰인으로부터 오더를 받으면 먼저 홍보부에 행사내용을 전달하고
모델매니지먼트부와 함께 행사에 어울리는 모델을 캐스팅한다.

제작부와 함께 무대 조명 음악 의상코디네이션등을 하나씩 준비.점검하고
한편의 작품을 구성하듯 쇼를 만들어간다.

패션쇼는 단순히 옷을 선보이는 무대가 아니라 디자이너가 의상에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세계가 펼쳐지는 장이다.

패션쇼기획자는 무대에서 모델 음악 조명 연출등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게 해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

따라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회사의 모든 부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또 항상 의뢰인들과 접촉해 그들의 주문사항이나 의도를 회사에
전달하고 패션쇼를 제작,준비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선점등을 의뢰인에게 제시한다.

이를테면 회사와 의뢰인의 매개체와 완충지대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력과 추진력뿐 아니라 제반 쇼진행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부서간 이견이 발생했을 경우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또 패션쇼는 항상 현장에서 진행되는 실제 상황이므로 계획에 없는
돌발적인 일이 생겼을 경우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의뢰인들과의
만남에서는 회사를 대표하는 입장이므로 신중하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자세와 고객들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들어 행사장 무대뒤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완성된 형태의 쇼만을 생각하고 패션쇼기획자를 더없이 화려한 직업이라
여기는 것같다.

하지만 패션쇼기획자는 쇼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관여하고 조절해야
함으로 음악 미술 조명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또 무대작업을 할 경우 필요하다면 직접 못을 들고 망치질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오랫동안 애써 준비한 행사가 기획의도대로 완성돼 무대에 오르면
마치 탐험가가 정상을 정복했을 때 갖는 뿌듯함을 느낀다.

행사후 의뢰인이 찾아와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을
때 그동안 쌓인 피로가 깨끗이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는 나자신을 발견한다.

안현서 < 모델센터 패션기획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