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한국의 음식이다.

내가 미국사람이긴 하지만 그 쪽 음식보다 한국게 오히려 더 좋다.

지난 여름 부모님을 만나러 오랜만에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주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즐겨 먹은 것도 돼지갈비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등이다.

한국에 온지 15개월이 지나는 동안 한국음식만 즐겨 먹다 보니 입맛이
변했나 보다.

그런데 음식문화중 술 문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곳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맥주 소주 레몬소주도 마셔봤지만 그래도
막걸리가 제일 좋았다.

한국의 술문화는 미국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비슷한 점은 술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점.

하지만 즐기는 것이 지나쳐 폭음으로 이어지는 면은 매우 다른 점이다.

그것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는 밤거리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쉽게 볼수 있다.

물론 나도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취하도록 마신 적이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자고 했을땐 무척 당황했다.

노래를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이런 문화는 처음이었다.

여기 오기전에 독일에도 잠시 다녀왔지만 동서양의 술 문화는 이런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폭음을 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즉시 신고를 하고 경찰이 달려온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일을 항상 벌어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전 지하철에서 큰 봉변을 당할뻔 했다.

술냄새를 풀풀 풍기는 한 아저씨가 갑자기 껴안는 거다.

너무 놀라서 하지 말라고 밀치자 오히려 화를 내며 욕까지 해댔다.

그런데 나를 더 놀랍게 한 것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뿐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너무 무서웠다.

고국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주위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찰까지 왔을
법한 일이었다.

나 뿐만 아니고 다른 여성들도 이런 봉변을 당한 걸 여기와서 몇번이고
본일이 있다.

술에 취한 사람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도 간간히 보았다.

하지만 그 때도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서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얼굴들이다.

이럴 때마다 힘이 든다.

''키도 작고 어려보여서였을까, 여자이니까, 아니면 외국인이기 관심을
갖지 않는 것 때문일까''하고 생각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