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아침7시30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잠원동의 아침을 여는 사조인의 함성이다.

칼날같이 매서운 겨울바람에 맞서 "사조금고"를 외치며 회사주변 1.5km를
구보하는 것으로 하루가 열린다.

7년전 주진규사장이 취임한후 "발로 뛰는 영업"을 강조하면서 우연찮게
시작된 행사다.

회사조직은 커지는 반면 신입사원들의 정신자세는 예전의 선배들보다
나약해져가자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정신자세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앞만 보고 뛰었다.

하지만 이젠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고 행인들에게 인사를
건넬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나마 업무를 잊고 마음편하게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인 셈이다.

이렇게 뛰고나면 하루일과가 상큼하게 다가온다.

발맞춰 뛴 뒷끝이라 사무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우리회사의 조직은 6개 부서로 이뤄져있는데 그중에서도 기획실은 다른
회사에 비해 특이하다.

다른 회사친구들은 "상호신용금고에 도대체 무슨 기획업무가 그리 많으냐"
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우리 기획실은 각종 경영방침을 수립하고 경영분석과 평가작업을 진행한다.

또 각종 데이터를 수집 검토하는등 업무범위가 매우 다양해 어찌보면
대기업의 기획조정실을 연상시킨다.

기획실업무는 상임감사가 총괄주도하는데 평소엔 소탈하고 장난끼가 심해
직원들과 격의없이 지내다가도 일단 업무를 시작하면 날카롭고 빈틈이 없어
"면도날"로 불린다.

게다가 젊은 직원들과의 야근도 결코 마다하지 않는 정력가여서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다.

아침달리기에서 다져진 건강 덕택이다.

나는 60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입사하자마자 기획실에 배치됐다.

영업부서에 배치된 입사동기들은 무척 부러워했지만 나만의 고민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군생활동안 등한했던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은 야근을 밥먹듯이 즐기는
(?) 동료들의 모습과 함께 차츰 허물어지고 금융에 대한 문외한인 처지라
적응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러나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업무를 익히고 출퇴근때도
용어숙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마음만큼 업무숙지가 쉽지 않은데다 하루하루가 고달픔의 연속
이었다.

특히 입사한지 한달만에 한장의 기안결재를 받으려고 수없이 수정하다가
밤을 꼬박 지새운 일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그냥 넘어갈수도 있는 일인데도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같기도 하고 야근을
위한 야근을 시키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적잖은 실망과 원망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뒤 나를 강하게 하려는 훈련과정이었음을 깨달았을때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교차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지금도 사회에 대한 신고식을 매섭게 치른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서야 비로소 업무에 눈을 뜨고 진정한 사회인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 셈이다.

우리 회사를 21세기 초우량 금고로 이끌기 위해 비록 걸음마도 채 익히지
않은 사회초년생이지만 미흡하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침마다 달리면서 늘 새롭게 다져보는 각오다.

이윤희 < 사조상호신용금고 기획실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