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대는 고사하고 60줄로만 들어서도 "오너"가 아니면 기업에 남아 있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나이엔 적어도 "대표이사" 명함은 갖고 있어야 월급장이로 버틸 수
있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40대, 더 나가 30대까지 내치는 요즈음 상황에선
더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국내최대 금고제작업체인 신진금고의 김철수 영업담당상무가 바로 그
예외에 해당한다.

나이로 보면 김상무는 예외중에서도 예외다.

23년째 상무를 달고 있어 "만년 상무"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그의 나이는
여든넷.

다른 사람 같으면 일을 맡겨 줘도 하기 쉽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오늘도
젊은이들을 독려하며 영업일선으로 나간다.

노객에게 영업을 맡긴 신진금고도 대단하지만 체력과 영업능력에서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80줄의 김상무 또한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김상무는 4대가 한집에서 산다.

증손자까지 봤지만 누구하나 딴살림을 내주지 않았다.

고리타분하다고 비쳐질 수도 있으나 아들 손자 며느리 모두가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80을 넘어서도 젊은이들과 당당히 맞서는 체력과 영업능력은 어디서 나오며
4대를 한집에 잡아두는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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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사람 = 유성 < 유통부 기자 > ]


-팔순을 넘겼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머리는 백발이지만 피부는 60대 못지않게 팽팽하고 혈색도 좋았다)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운동 외에 별게 있겠습니까.

젊었을 때나 80줄로 들어선 지금이나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이 건강을 지켜준 1등 공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꼽는다면 아침식사 전에 30분정도 하는 아령과 줄넘기가
있습니다.

애들은 그러다 다치면 어쩔려고 그러느냐며 말리지만 어쩌다 그냥 출근한
날은 온종일 몸이 쑤셔 더 죽겠더라구요.

내가 지금껏 건강하게 직장생할을 할 수있는데 성격 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않는 편이거든요.

유머의 생활화를 통해 항상 웃음이 넘치는 생활을 유지해온 것도 비결
이라면 비결인 셈입니다"


-자연의 수 못지않게 직장에서도 상당히 장수하고 있는데 신진금고에
몸담은지는 얼마나 됩니까.

"예순두살 때니까 75년 입니다.

그전에 있던 금고회사가 부도로 쓰려져 놀고 있는데 신진금고 사장이
영업상무로 부르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23년간 영업상무 한 직책만 맡아 금고비업계 최고의
영업맨이 되겠다는 목표로 뛰었습니다.

(금고비는 은행등 금융기관에서 사용하는 규모가 큰 금고를 말한다)

나로인해 이 회사가 손해를 봐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성실만을 생각했습니다.

씨를 뿌린만큼 거두듯 성실도 행한만큼 결실을 맺는다는 진리를 믿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뻘되는 사람이 물건을 팔러오면 사는 쪽에서 아무래도
불편해 할 것 같은데.

말도 조심해야 하고 마음대로 튕기기도 어렵고.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제2금융권의 금고비영업을 당당하고 있는데 금고비는 특성상 신뢰가
판매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품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덕을 많이 봅니다.

8대2정도로 유리할때가 불리할 때보다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나이든 티를 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이 많다는 것을 내세우다보면 추한 노인네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대부분 50대이하인 구매책임자들의 나이에 맞춰 이야기거리도 준비하고
행동도 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지방출장이 많을텐데 그 때는 다르지 않습니까.

객고도 남다를테고, 집에서도 걱정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2일간의 지방출장을 다녀옵니다.

시골여관에 혼자 누워있으면 웬지 모를 서글픔이 엄습하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살아꿈틀거림을 확인하는 즐거움 때문인지 지방영업에
나설때 오히려 더 가슴뿌듯합니다.

체력은 아직은 괜찮은 편입니다.

나이가 있는 만큼 젊은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병치레는 안합니다.

올같은 추위에 내의를 입지 않고 지낼 정도면 건강한 것 아닙니까.

먹는 것도 잘 먹습니다.

갈비 2-3인분은 거뜬히 해치웁니다.

이가 특히 남보다 튼튼합니다.

썩어서 새로 해넣은 3개를 빼고는 모두 멀쩡합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영업직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최고참 영업맨으로써 한말씀 해주시죠.

"한치 앞만보고 단기간의 실적에 집착하기보다는 성실하게 영업을 해나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프로가 되려면 초기에 직장을 바꿔가며 이분야 저분야 다양하게 경험을
쌓아둘 필요도 있습니다.

단 이직할때는 훗날 전문가로서 한직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정년이 훨씬 넘은 나이라 명예퇴직 바람에 대한 느낌도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침몰하면 선원 모두가 익사하기 십상입니다.

각 기업들은 침몰의 위기를 극복하고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가고자
고육지책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회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능력있는 직원들에게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줌으로써 일할 의욕을 앗아가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볼때 나는 참으로 행복한 직장인입니다.

그동안 사장님께 몇번이나 퇴직의향을 밝혔으나 거동이 불편할 때까지
회사를 위해 일해 달라고 극구만류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4대가 한지붕 아래서 같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껏 분가해 사는 핏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몇년전 손자녀석이 결혼을 했을때 분가를 여러차례 권했지만 본인이
마다하더군요.

우리집처럼 화목한 가족분위기를 느낄만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나요.

지난 94년에는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을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부인 한상희씨는 82세이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모관대를 쓰느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은 괜찮더군요.

집에서는 퇴근후 두살박이 증손자와 함께 노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병아리들이 어미닭 품으로 모이듯 퇴근한 자식들이 하나둘 집으로 들어올
때는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노인이 되면 마음이 애와 같아진다는 말이 맞아요"


-자녀들이 모두 효자로 소문났다는데 자식교육은 어떻게 했습니까.

"애들을 가르칠 때는 중용을 가장 염두에 두웠습니다.

지나치게 간섭하지도, 너무 무관심하게 자식들을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친 간섭은 자식들로부터 반발과 부담만을 유발시킬 뿐입니다.

반대로 너무 무관심하게 자녀들을 대하는 자유방임식 교육은 우리부모는
무정하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애를 삐뚤어지게 자라게할 위험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영업일선을 지켜 나갈 작정입니다.

바람을 물었는데 이 나이에 더이상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욕심
이겠지요.

움직일 수 있다는 자체로서도 한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경험 한번 겪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살아
왔습니다.

욕심없이 살아서 그랬는지 망신 한번 안당했다는 점도 다행스럽게 생각
합니다.

앞으로도 반쯤 물이 담긴컵을 보고 "물이 이만큼이나 남았구나"라고
여기는 넉넉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갈 생각입니다.

주변에선 나를 보고 오복중 사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며 부러워합니다.

나이 여든넷(수복)에도 병치레없이(강녕복) 비교적 넉넉하게 사회생활을
하고(부복) 남들로부터 욕먹지 않으며(유호덕복) 편안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나머지 하나인 고종명이야 죽은 뒤의 얘기니까 산자로서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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