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가씨는 그가 좋아하는 유자차를 가지고 와서 의미있는 미소를
날리다가 박사장이 입구에 나타나자 이내 모른체 한다.

지영웅은 벌떡 일어서서 악수를 하면서 박사장을 맞는다.

"안녕하세요? 박사장님"

그러나 그가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예민한 박사장은 이내 그의 심상찮은
기분을 알아차린다.

"미스터 소에게 무슨 말을 했다면서?"

"네, 했습니다. 팁이야기 말씀이신가요?"

"그래. 요새 무서운거 많은 세상에 이렇게 나처럼 목숨걸고 데이트하는
손님도 많지 않지요? 어때?"

"모르겠어요.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어요. 나는 누님 한 분
밖에 안사귀니까 그런것 몰라요"

그는 아무래도 무시무시해서 뿌루퉁하니 대답한다.

"오늘은 내키지 않는 모양이지요? 사랑을 안 하면 침대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던 말 정말인것 같아"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눙친다.

젊은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긴 쉽다.

그래야 이 아름다운 남자를 품에 안을 수 있단 말인가? 기분좋게
말이다.

누구보다도 그녀는 기분좋게 남자를 안는 것이 제일 소중하다고 느끼는,
이 방면에 도가 튼 여자다.

그러나 돈주고 만나면서 비위까지 맞추고 좀 건방지다 싶다.

"팁은 두둑히 가지고 왔어요. 원하는 만큼. 됐어요?"

"그게 아니구요. 실은 사모님께서 제 비앰더블류차를 갖고 싶다고
했지요?"

"그랬지요"

그녀도 아주 솔직 담백한 맛이 있는 여자였다.

잠자리가 사나워서 그렇지 기분을 맞춰주는데는 도가 튼 사장님이다.

처음부터 그건 그랬다.

"저는요, 사실 이 차를 운영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세금도 많고 고장은
없지만 이 차 때문에 만약 사모님 말고도 또 애인을 둔다면 어떻게
제 몸이 남아나겠어요? 저는 몸도 약하고 이 차를 팔고 싶어요"

"그렇게 버거운 차를 왜 샀어요?"

"말씀드렸지 않아요? 제가 사랑한 사모님께서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주고
간 거라구요. 정말 눈물나는 이별이었어요. 벌써 오래전 이야기지만요"

지영웅은 오피스텔을 사주고 오래 사귀지도 못하고 망명을 간 그 요정
마담을 그리운 듯이 말했다.

사실 이 차는 자기 남편에게 비밀을 지켜달라는 뜻으로 권옥경이가 준
차였다.

권옥경은 그러니까 비앰더블류로 이별의 선물을 했고, 입을 막고 간
상속녀였다.

골프채와 비앰더블류와 잘 생긴 외모로 그는 어디 가나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몸판 돈이지만 만원권만 펑펑 팁으로 날리고 다녔다.

명실공히 압구정동 황태자가 된 것이다.

허허허허.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