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가, 어떤 시대에도 그 국가나 시대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서서 역사적인
큰 업적을 이룩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위인"이라고 칭송한다.

역사의 주인공은 위인들이 아니라 대중이라고 보는 대중사학자들도 위인
들의 리더십까지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다는 한가지만으로도 한국인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위인이다.

그는 한민족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도정치를 실현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놓은 성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외에도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군법의 제정, 방대한 편찬사업, 국토의 확장 등 그가 재위
32년동안 이룩한 업적은 그야말로 "대왕"이란 칭호를 붙여도 모자랄만큼
방대하다.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모든 사업이 세종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게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었던 리더십의 실체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세종은 위인이될 자질을 타고났던 것으로 보인다.

성품이 인자했고 총명했으며 부지런하고 검박했다.

스스로 "한번 본 것은 잊지않는다"고 했고 "궁중에 있을 때는 늘 책을
손에 잡았고 한가로이 있은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학문을 좋아했다.

매일 새벽 2시께(사경) 일어나 책을 읽었고 정사를 본 뒤 경연에 나아가
학자들과 학술 토론을 벌였으며 내전에 들어가서도 잠을 잊고 책을 읽었다.

즉위한 직후에는 경회루 동쪽에 작은 초가별실을 짓고 그곳에 거처했다.

그는 또 모든 정사를 독점해서 혼자처리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즉위한지 18년째 되는 해부터는 세자(문종)에게 서무일체의 결재를 맡겨
버렸다.

집행기관인 육조로부터 받던 정무보고도 의정부에 넘기고 중요한 일만
챙겼다.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대신들과 의논한 뒤에 시행해 잘못된 일이 없었다.

특히 관리의 수탈로 농민의 피해가 극심했던 전세를 개혁하기 위해 먼저
시안을 내놓고 문무백관에서 촌민에 이르는 약 17만명의 찬반여론을 조사한
뒤 연구와 시험을 거듭한 끝에 14년만에야 공법을 확정하는 신중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상벌과 인사를 공정히 다뤘다.

인사는 명철한 두뇌로 과단성있게 처리해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비록 노비일지라도 인명을 존중해 엄격한 행형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신하를 예로 대접해 재위하는 동안 사대부로서 형벌을 받아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도 특기할 일이다.

항상 유사시에 대비해 국방을 튼튼히한 것과 병법에 밝았던 것은 문치주의
로만 흐르지않고 문무겸전의 이상적 군주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왜인과 야인(여진족)도 대와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을 사모했다"는
기록은 그의 리더십의 특징적 면모를 엿보게 한다.

다섯번이나 바뀐 명황제들이 모두 "어질다"고 했다는 데서는 그의 능난한
외교수완을 읽을 수 있다.

한편 서화에도 능했다거나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는 "여민락" "보대평"
"정대업" 등 향악을 막대로 장단을 쳐가며 하룻밤새에 창작했다는 기록은
예술적 창작에도 남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참고하면서도 의약
이론이나 기술, 음악까지 주체성을 살려가며 우리실정에 맞게 재창조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30여년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던 백성들이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통곡하지않는 사람이 없었고 "해동요순"이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은
군왕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지녔던 한 위인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두터웠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이 되는 해다.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가 하면
"문화와 과학이 앞서는 사회"를 주제표어로 정했다.

그리고 기념비적 세종동상을 건립하고 국어정보화사업을 "21세기 세종
계획"으로 명명하는 등 갖가지 기념사업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치적을 선양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정책입안자들이 세종의 위대한 정신적유산은 배우려들지 않고
겉치레에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이 보여 안스럽다.

지금은 구태의연하게 겉치레에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세상에 믿을만한 놈은 하나도 없다"거나 "진실이라는게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요즘 세인들의 넉두리를 들으면 과연 오늘날 이 시대와
국가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세종때 조정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청렴결백했다.

황희나 맹사성같은 정승들의 일화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들은 또 역사를 두려워 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요즘 고위공직자중에는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을 공손으로 여기고
곱게 보이는 것을 충성으로 삼으며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거짓말 하는 것을
곧은 일로 여기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세종대왕은 오늘날의 정치인처럼 다음 선거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까지 생각한 정치가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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