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시내에는 미국의 톱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마돈나가 주연하고 있는
영화 "에비타"가 상영중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무엇인가 우리가 되짚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세기동안 영광과 좌절, 그리고 재기의 세월을 보냈다.

아마도 아르헨티나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포클랜드
전쟁과 페론주의, 라울 알폰신의 이름이나마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금세기초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 부국 가운데 하나였다.

국민은 모두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누렸다.

아르헨티나의 넓은 목장에서는 끊임없이 고기와 우유가 쏟아져 나왔고
국민은 비록 가난한 사람이라도 거의 식사때마다 고기와 우유를 먹을수
있었다.

그러나 수출이 저조해지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했다.

그때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에비타의 남편 후안 페론이었다.

그는 노조지도자들의 요구는 거의 전적으로 수용하였고 국민들의 복지에
지극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에비타는 다양한 경력을 지닌 여자로 그녀의 남편을 진심으로 내조하였다.

페론정권의 지지도는 매우 높았고 당시로서는 아르헨티나가 다시금 부강해
지리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인의 애인 에비타가 죽었을때 아르헨티나의 라디오는 다음과 같이 방송
하였다.

"에비타여사는 조금전 운명했습니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33세를 살았습니다"

그뒤 페론정권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군부가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나 페론정부는 붕괴되었으며 페론은
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의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비극 그 자체였다.

청년 학생들은 무장해 봉기하였고 거의 2개 지역을 석권하였다.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린 이 시기에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들간의 반목은 깊어져만 갔다.

80년대초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국민들의 감정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영국과의 영토 분쟁지역이었던 포클랜드 제도를 중심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결과는 비참한 패배였고 군사정부의 지도자들은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다시금 선거가 치러졌을때 사람들은 페론주의자들이 다시 집권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라울 알폰신 대통령이 개혁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마돈나가 부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가사는 아르헨티나의
교훈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만일 우리가 지금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들에게
아르헨티나의 사례와 같은 결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철저히 스스로를 가다듬고 모든 일에 임해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지도자대로, 국민들은 국민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게 보장될 것이다.

윤승환 < 경기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