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국제수지를 방어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년도의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전반적인 내외의 경제여건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차피 모든 거시정책목표를 모두 달성하기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정책
목표간의 선택과 희생(trade-off)이 불가피하다면 긴박한 현안과제로 부상한
대외수지의 개선과 물가안정을 통한 실질소득의 보호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면서 경제의 체질개선 노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문제는 그러나 성장률의 하락이 단기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장기화될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는데 있다.

여러 예측기관의 분석결과들은 최근에 들어서면서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
자체가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의 체질은 극히 허약한 상태이고 일반의 저축성향이나 경제를 하려는
의지는 약화되고 있다.

또한 주변 경쟁국 내지 후발공업국가에 대한 비교우위도 잠식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민간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은 감속
성장에 따른 문제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감속성장에 따르는 최대의 문제는 "실업"이다.

금년도에만 20만명 이상의 추가실업이 예상되고 있으며, 2~3년내 실업률이
3%에 육박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업규모는 그나마 "낙관적"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것이다.

실제로 그보다 높아질 위험이 크다.

성장률의 하락 자체 뿐만 아니라 성장에 대한 생산성 상승의 기여도가
높을 수록 경제성장에 대한 고용 탄성치는 감소할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점은 오늘날 국내기업들이 전례없이 심각한 구조조정의
압력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 경쟁력 강화의 원천이 인건비 절감에만 있지는 않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대부분 선진국 기업들이 추진해온 미시단위에서의
과감한 리스턱처링(restructuring)이 없이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의 노동법개정과 관련된 "정리해고제"의 문제도 그러한 시각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기업경영상 해고요건이 발생한 경우 이를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결코
문제의 "본원적 처방"이 될 수 없다.

노동시장에 대한 유연성을 정치적 이해관계나 감성적 이유에서 제약하는
경우 결국은 냉엄한 시장의 제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클리턴행정부의 최대치적은 1천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용기회의 창출에 있다.

제조업에서 해고된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서비스부문에 투입되었다.

산업의 구조조정에 부응하여 전직 전업을 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작동한 결과이다.

실업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민간경제주체의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첫째는 실업문제의 "심각성"자체에 대한 인식이다.

다른 거시정책 문제들과 달리 실업은 비단 경제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물리적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며 개체의 자아실현 및 인간존엄성과
직결된 "실존의 문제"라는 점이다.

둘째 감속성장의 시기에 진입하면서 그동안 견지되어온 "고임금-완전고용"
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원론적 상식이겠으나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상승은 반드시 인플레를 통한
실질소득의 하락이나 실업을 유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중 최대의 고용창출 성과를 경험한 미국의
경우 전체 가계 60%이상의 실질소득은 20여년전(1975년)이하로 줄었다.

대량실업시대의 실질소득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시장의
정언명령이다.

셋째 오늘날의 실업은 선진국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케인즈
(J.M Keynes)류의 재정정책으로 치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보화가 가속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정부는 정책을 마련하는데 있어 우선 최선의 사회
정책은 고용정책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으며 그동안 누차 강조
되어온 직업교육.전업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둘째는 정보통신과 같은 미래지향적 산업에서 소규모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개척심, 모험심 그리고 전문지식을 겸비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미래지향적 산업의 틈새시장(Niche)에 대하 진입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희망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셋째 지적 자산과 모험심을 겸비한 기업가에 대한 "벤쳐
캐피탈"의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근로자들의 노동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실업자에 대한
사회정책적 지원과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국민경제가 감속성장에 진입하면서 사회.경제적 갈등 또한 증폭되어 갈
위험이 크다.

특히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그리고 민간부문 내부에서도 계층간과 집단
간에 분배 몫을 들러싼 갈등이 재연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및 사회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갈등에 기인한 국가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정부의 "갈등에 대한 관리능력"의
배양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