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데이콤 국제전화사업본부장>

국제전화 협정요금에 대한 미연방통신위원회(FCC)의 인하압력이 뜨거운
통상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향후 국내 통신산업의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련된 정확한 개념이 아직 공론화 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일부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이 현재 인하압력을 높이고
있는 것은 서비스 이용대가로 지불하는 국제전화 요금이 아니라 국제
전화서비스 사업자끼리 상대측 망의 사용대가로 지불하는 정산요율이다.

국제전화에 관한 한 우리나라 요금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한
수준이므로 미국이 우리나라에 국제전화요금 인하를 요구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발신통화량이 개도국보다 많은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보니 선진국은 늘상 개도국으로 정산료를 지불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미국의 경우 90년에는 28억달러, 96년에는 55억달러로 국제전화
정산적자가 심화돼 전체 대외무역적자의 5%를 점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만성적인 정산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그간 사업자 중심으로
펴오던 전략을 바꿔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각국에 대해 정산료 인하
압력을 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추구하고 있는 정책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유연성부여정책"으로 이는 미국사업자들이 시장조건에 따라 미국
사업자들에게 사업자별로 상이한 정산요율을 적용할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 국제단순재판매, 고국직통통화, 콜링카드, 콜백등의 대체통화수단을
규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 상대국 발신통화를 미국발신으로 잠식해
요금및 정산요율의 인하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제전화분야의 핫이슈가 된 "인하기준치및 기한설정정책"
은 각국을 경제소득기준 3개 그룹으로 구분한 다음 지금의 3분의1수준인
정산요율 목표상한과 협상기한을 설정하고 기한내에 목표수준으로 낮추지
않을 경우 정산료지불정지 상대국사업자의 미국시장 진출제한, 기존
진출사업자의 서비스제공중지 등의 초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신정산정책은 정산적자개선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미국만이 이 기준을 시행하려 하고 있고 실질적인 압력수단을 가진
유일한 국가이므로 이 기준에 따라 정산요율 협정이 체결된다면 전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과는 매우 낮은 정산요율을 적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사업자가 미국 이외의 나라에 통화를 보내려 할때 통상
직접 보내는 것보다 미국을 경유하여 보내는 것이 보다 저렴하게 될 것이다.

즉 사실상 모든 통화가 비용이 저렴한(정산요율이 낮은)미국사업자를
거쳐가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통신후발국은 미국 중심의
통신선도국의 하부망으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크다.

이렇듯 미국의 신국제정산정책에는 국제전화분야에서의 정산적자해소라는
표면상의 이유외에 전세계 통신주도권 획득이라는 목표가 숨어있는 것이므로
이에대한 신중한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도 작년부터 정산적자국(96년 기준 1백24억원 추정)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의 정산요율이 동일율로 인하된다면 우리의
정산수지 적자도 경감되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정도하고만 정산흑자이고 나머지 나라에 대해서는
정산적자인데 정산흑자국과의 정산료 인하율은 높은 반면 정산적자국과의
정산료 인하율은 상대적으로 낮아 미국이 주장하는 수준으로 정산료를
인하할 경우 오히려 우리나라 국제전화사업자들의 정산적자는 크게 확대되고
있는 국제전화분야에서 요금인상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거센 압력을 계속해서 거부할수 만은 없는 우리의 현실과
국제경쟁력강화를 위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한 수준의 국제전화
요금을 더욱 낮춰가야하는 국제전화사업자 및 정책당국에 커다란 딜레마가
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의지대로 된다면 우리나라 국제전화사업자들은 정산수익과
발신통화의 급격한 감소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는 국내사업자의 대외경쟁력의 현저한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정산료 결정원칙에 관해서는 국제통신의 국제연합체인 국제전기통신연합
(ITU)에서 다자간의 합의로 결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이를 상대방 국가에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 유럽국가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대다수 국가가 나라들과
공동으로 국제전기통신연합에서 정산료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정산적자도 확대되는 추세인 현상황에서는 전세계 정산료
인하가 국익에도 부합할 것이므로 보다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