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 같으냐며 불안해한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라걱정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누구나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말 나라와 경제가 어떻게 될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하면 풀린다고 설득력있는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은
없고, 그러기에 흰소리나 하다 헤어지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중국서 까마귀를 수입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얘기도
있었다.

들에 나가 봐야 까마귀도 없으니, 중국에서 수입해서라도 까마귀고기를
먹고 모두 잊어버리는 것 밖에 이 답답함을 해결할 방법이 달리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까마귀고기를 먹고서라도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것 첫번째는 "나는 한푼도
받지않았다"다.

이유는 단 한가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신선함을, 모든 것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새로 듣게 되면 더없이 상쾌할 그 즐거움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한보사건과 관련, 야당에서는 김영삼대통령 본인의 도덕성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지금도 나는 "취임이후 한푼도 받지않았다"는 그의
말에 거짓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바로 그런 인식이기 때문에 한보라는 엄연한 사실은 정말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한푼도 받지않았더라도 5조원의 부실대출이 빚어진 것 보다는 좀 받고
3조원쯤만 쏟아부은게 차라리 낫지않았을런지, 도덕성과 논리의 양면에서
모두 혼돈이 빚어졌기 때문인지 이런 한심한 상념에 빠져들기도 한다.

한보사건과 관련, 정부에 대한 일반적 시각은 분명하다.

돈을 받고 그처럼 부실대출을 해줬거나 묵인했다면 부도덕하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고, 모르고 있었다면 무능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것은 검찰에서는 물론이고 국회특위
에서도 진상규명에 나설 채비이므로 지금 여기서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다만 한가지, 한보사건 뒷처리과정만 보더라도 현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낙제점이라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보관련 은행에 대한 한은특융은 절대 안된다"는 청와대관계자의 발언
→일본 및 홍콩은행들의 한국계은행 현지법인 및 지점에 대한 대출기피
→일본중앙은행 등 한국정부에 대책마련 촉구→이경식 한은총재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특융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이어진 일련의 해프닝만 봐도
그렇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자들이 책임있는 정책당국자에게 "관련은행에
한은특융을 해줄 생각인가"라고 묻는다면 그의 해답은 단 한가지 뿐이다.

"현재로서는 그런 조치를 검토해야할 정도로 관련은행사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가 정답이다.

더이상 나가는 것은 금물이다.

자신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받아들이는 사람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는 신중함이 있었다면 이번 해프닝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한은특융은 한마디로 부실대출에 따른 은행피해를 돈을 찍어내 메워주는
것이고 그 부담이 즉각적으로 국민에게 전가되는 만큼,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건 누구나 잘 안다.

그렇다고 그런 관념적인 호오에만 얽메여 "우리는 그런 것 절대 안한다"고
나서는 것은 정책당국자로서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엄격히 말하면 현실로부터의 도피고 세평에만 연연하는 직무유기다.

한보를 이른바 "국민기업차"하겠다는 발언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정재벌에 넘길 경우 특헤시비가 빚어질 것이므로 공기업화하겠다는 구상,
그것은 애시당초 산업의 효율은 도외시하고 무조건 욕만 먹지않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세평이나 인기에 연연하는 사람이라면 하루빨리 공직을 그만두고
TV탈렌트, 그것도 악연은 하지않는 연기자가 되는게 옳다.

나는 노동법파동도 현정부와 집권당의 미숙함이 큰 원인이라고 본다.

필연적으로 파장이 따르게 마련인 중요한 법개정인 만큼, 야당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했다.

그들의 의사진행방해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경위들을 대동하고라도
본회의장시 입장해 찬반토론을 벌이는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려는 자세를
보여줘야 했다.

그 법개정이 당리당략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난국타개를 위해 정말
불가피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깨달을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새벽 날치기처리는 모든 것을 버려놓았다.

마지막 단계의 수정, 상급단체 복수노조유보도 현실감없는 것이었다.

이미 강력한 신세로 존재하는 민노총이 그런다고 없어지는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금지를 유보하지 않는 대신 상급단체 복수노조도
유보하지 않았다면 양상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정리해고제가 쟁점화됐지만, 법개정 이전에도 과잉인력에 대한 정리해고는
"경제현실"로 법정에서도 인정해온게 사실이고, 이번 개정법도 정리해고를
기업자의에 맡긴 것이 아니라 노동위원회판정을 거치도록 했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정부측에서 좀더 치밀하게 대처했다면 반대논리가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저런 점을 되돌이켜 보면 오늘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렵게 된데는
현정부의 위기관리능력부족, 그 미숙함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도덕성에 뭇지않게 관리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명제지만, 현정권의 지난 4년을 되돌아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한보와 노동법후유증이 새학기 개학이후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그래서
학생데모-춘투-선거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올해는 정말 걱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