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이란 말과 같이 한국경제는 심각한 불경기 속에서 연초부터
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를 맞이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경기순환적인 불황과 구조적인 불황 그리고 세계경제의
불황등 3가지의 불경기 요인이 한꺼번에 겹치는 소위 복합불경기를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중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보사태가 터져 국민
모두가 총체적인 위기와 허탈감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수년전 불법과 부정 그리고 부조리의 대명사였던 수서사건의 장본인이었던
한보가 다시 제기하여 천문학적인 금융부조리를 저질렀다는 것이 우리들을
더욱 슬프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때 수서사건이 불법과 부정이었다면 한보는 분명이 침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오히려 재벌 14위의 거대기업이 되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한보사태가 기업과 은행 사이에서만 일어난 단순한
금융사고가 아니라고 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보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수서사건때 법정관리로 말미암아 채무가
동결되고 편법대출이 자행됐기 때문에 오히려 경영권이 보장되고 심지어
재산권이 보장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적으로 부정과 불법을 용인해줌으로써 오늘의 더 큰 한보사태를
잉태시켰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보사태는 단순히 기업과 금융기관과의 부조리가 아니라 기업을
감시하여야 할 공정거래법상의 문제와 금융기관을 다스려야 할 관계 그리고
그 관계와 연결된 정계등의 유착에 의한 부조리에서 발단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다스려야할 사법적인 조치등이 충분하지 못하여 부정과
부조리를 확대 재생산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월 22일 R 돈부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일본경제신문에
의 기고에서 한국은 수십년에 걸쳐 금융을 통제해왔지만 오늘날
금융시스템은 활력의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경제정책이 혼란을 거듭함으로써 한국경제의 모든 것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한보사태를 보는 시각은 단순히 한 기업의 책임문제 뿐만 아니라
관계기관 모두의 책임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히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잘 산다"는 종래의 신화에서 이제는
"기업주는 망해도 기업만 산다"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것을
한보사태처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세계11위의 GNP 대국이며 세계12위의 무역대국인
동시에 세계14위의 인구대국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선진국의 대명사인 경제혁력개발기구(OECD)에
이미 가입하여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경제구조와 국민의식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것이 곧 관주도의 경제운영과 결부되어 한보사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발생시킨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에게는 자본주의의 제도는 분명히 있지만 그 정신이 없으며
시장경제의 틀은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그 원리와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고는 하지만 천민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조리와 불법이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먹고 사는 의식주문제에는 큰 불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비정한 경제논리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경제윤리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한보사태를 철저하게 규명하여 분명한 사법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회적인 정의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사회적인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으며 전국민의 일할
의욕을 고취시켜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심각한 복합불경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금년들어 한달간의 무역적자가 무려 34억달러에 달해 외채증가와
이에 따른 물가불안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한보사태를
한점 의혹없이 명쾌히 처리해야할 것이다.

한보철강이 기간산업이라는 명목하에 천문학적인 은행대출을 정당회시킨다
든가 그룹관련기업의 연쇄도산과 부도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한보계열에
지속적으로 자금지원을 하는등의 편법을 계속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엄청난 금융부조리와 전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키고도 반성을
하지않는 개인의 경영권과 재산권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이 이번의 한보사태를 계기로 불법과 부정을 일삼으면서 정경유착으로
사업을 하려는 정상배들을 철저히 응징하여 사회적인 기강을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한보사태가 남긴 바람직한 교훈은 한보와 같이 사업을 하면 철저히
망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야한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적인 후유증이 다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한보사태를
철저히 규명하고 응분의 사법처리를 해야한다.

이것이 곧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할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