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 <청운회계법인 회계사>

병이 나면 보통 몸에 열이 난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열이 많이 있는 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노력을 더 기울인다.

즉 병의 증상보다는 병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경제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매일 TV나 신문에 보도된다.

고비용.저효율로 인하여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고비용.저효율은 우리나라 경제병(병)의 원인인가,증상인가.

고비용.저효율은 우리나라 경제병의 증상이라고 보아야 하며 그
근본원인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의사가 열이 나는 원인을 찾듯이 정치가나 경제학자, 기업인들
모두가 고비용.저효율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고비용.저효율의 원인의 하나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수천년 동안 농업사회여서 농업문화를 이루었다.

국토는 70%가 산으로 둘러싸여 이동이 쉽지 않아 정착화된 농업사회였다.

따라서 혈연과 지연이 중요시 되어 인연(인연)에 의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 인연에 의한 문화는 현재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이 인연에 의한 문화는 합리성이 중요시되는 경제사회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는 말이 있다.

관공서나 기업체이거나 간에 능력이 있어도 인연이 없으면 발탁되지
못하고 능력이 없어도 인연이 있으면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무능력한 사람이 관공서나 기업체를 운영하게 되면 저효율이 될 것은
뻔할 일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쓰려고 하여도 좋은 사업 아이디어보다는 은행에
인연이 없으면 대출을 받기가 어렵다.

돈의 흐름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업에 흘러가지 않고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흘러가면 그 기업의 저효율은 또한 명약관화한 것이다.

대통령이 돈과 인연을 끊겠다고(정치자금을 안 받겠다고)한 것은
기업의 저효율 방지를 위해서 훌륭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은행돈을 많이 쓰는 기업은 사업이 유망해서라기
보다는 어떤 인연(배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최근 한보부도사태로 정치권에 의혹의 눈길이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중공업이 과잉투가가 됐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과잉투자도 우리나라 문화의 유산이라고 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남이 논을 사는 것 보다는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데 왜 배가 아픈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문화이다.

미국에 이민을 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갑이라는 사람이 어떤 동네에서 과일가게를 열어서 장사를 잘 하면
을이라는 한국사람도 그 옆에 과일가게를 열어 피가 나게 경쟁을
하다가 결국은 둘다 망하고 손 털고 나오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그것이 개인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A그룹이 건설회사를 세우면 나도, B그룹이 화학회사를 세우면 우리기업도,
C그룹이 자동차회사가 있으니 우리회사도, 이렇게 경쟁기업에 질세라 같은
업종에 투자한다.

정부는 이러한 투자를 자유경쟁이라는 명분하에 허가해 주었다.

중복투자는 엄청나 현재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이 없는 것도 중복투자가
하나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중복투자에 돈이 흘러, 유망한 중소기업에 흘러들어갈 돈이
없어지면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계속 떨어지고 이는 우리나라 무역적자의
제일 큰 원인이 되고있다.

노동법이 통과된 이후 강경파업으로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노동법은 과연 악법인가.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은 외국기업에 비해 아주 취약한 상태에 있다.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인건비는 영국보다 더 비싸다.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인건비는 우리나라에서 시간당 9,99달러인 반면
영국에서는 6.94달러밖에 안된다.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기업은 망하고 만다.

만일 1천명의 인력이 있는 기업이 3백명을 해고하고 살아난다면 나머지
7백명 근로자는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고임금에 시달려 외국기업과 경쟁을 할 수 없어 망하게되면
1천명이 모두 직업을 잃게 된다.

따라서 해고를 해서라도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에게도 유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경한 투쟁파업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TV연속극에 나오는 임꺽정은 죄도 없이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양반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고 산다.

왜구를 물리치겠다고 군에 입대를 자원하나 군대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이 억울함을 못이겨 그는 결국 도둑이 되고 만다.

수백년간 양반에 억울함을 당하여 온 "상놈"의 울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러번 분출됐다.

동학란이 그것이고 4.19혁명, 그 이후 비슷한 데모와 파업이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이번 노동법에 대한 반대의 파업도 노동법이 파업의 뇌관을 제공했을
뿐 그 근저에는 지배자들의 오만에 대한 "상놈"의식의 과민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양반.상놈의식에 군사둔화가 더해져 파업은 더 강경하게 된것이
아닌듯 싶다.

전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사문화에 영향을 받아 데모를 하거나 파업을 해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과격해진다.

외과의사들은 병을 수술에 의해서 고치려 하고 법률가들은 사회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전문가들은 경제를 경제논리
하나만으로 해결하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논리는 서양의 논리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은 경제의 논리와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아울러 연구하여야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