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가 아름다워 명산이 많은 나라, 그래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어느 회사, 단체든지 산악회 모임이 조직되어 여러 동호회와 더불어
터주대감격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 또한 지난 20여 년간 젊음을 불사르며 몸담고 있는 (주)신성의
산악회를 통해 국내 명산을 두루 섭렵하다보니 어느새 산을 풍미하는
시인이 된듯 싶다.

어린시절 산을 보고 자라나 20대에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에 올랐고,
30대에는 사람을 사귀기 위해서 였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는 지금은 아마도 자연이 객지속의 고향과 어머님
품과같은 산의 안락함을 맛 보게하는 마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회사는 올해 창립 45주년을 맞는 중견 건설업체로 1986년 산악회를
발족한 이래 벌써 2백30회를 맞고 있으며, 그에 따른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

인생담을 논하며 새벽까지 캠프파이어를 하다가 배의 출항시간에 쫓겨
조재호 전회장 (현 사업)의 구령에 맞춰 정신없이 뛰던 월악산 코스,
한 겨울 동심속의 눈꽃을 보겠다고 시련을 거듭한 최수열 전 상무와
같이했던 한라산 등반, 체력단련 코스였던 악명 높은 오대산, 교통체증으로
새벽에 도착해 곧바로 출근했던 일, 2평 남짓한 대피소에서 10여명이
새우잠을 잤던 지리산의 기억 등, 지금도 많은 일들이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중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던 일은 백두산 등반이다.

어렵게 마련된 백두산 등반계획은 도착 다음날 목적지로 이동중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때 사고를 당한 동료들을 극진히 간호한 조선족 수간호사의 동포애와
밤을 새워가며 간호한 김성한 차장, 어인숙씨, 김봉주 주임 등 다른
동료들의 끈끈한 정을 보면서, 산악회 활동을 통한 따뜻한 인간애를
느꼈다.

이런 활동과 경험들을 통해 얻어진 동료애와 교훈은 바로 우리의 삶을
값지고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아닌가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