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이혼이다.

물론 합의이혼은 아니다.

기업체가 은행한테서 일방적으로 딱지맞는 비참한 이혼이다.

이혼설이 돌면 기업들은 다급해진 마음에 사채시장에서 새 파트너를 찾는다.

하지만 소문은 빠르다.

버림당한 이혼녀는 비제도권 금융시장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덕산 우성 유원 건영 한보 등이 파경설을 3달이상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쫓겨났다.

한보그룹과 산업 제일 외환 조흥은행 등과의 겹결혼은 사실 살어름판이었다.

"정부가 주선한 강제결혼이 얼마 가겠어"

남들이 손가락질했다.

결국 파경은 예상대로였다.

"믿었던 산업은행에서 시설자금 3천억원을 제때 대주지 않아 한보철강이
부도났다"

검찰소환이 임박한 지난 27일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산업은행이 끝까지
지원했으면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혼당한 여인의 "너죽고 나죽자"는 공갈.

한보그룹은 산업은행에서만도 8천3백26억원이란 거액을 저리로 끌어다썼다.

혼수및 생활자금(기업적정 부채규모)치곤 언감생심의 규모다.

윗분들에게 약한게 주인없는 은행의 생리다.

은행심사부 직원들이 며칠밤을 세워 내린 결론도 높은 데서 전화 한통 걸려
오면 결론이 달라진다.

결혼을 파경으로 가져가는 심술궂은 시누이들이다.

신용도니 장래성이나 떨들어대지만 국내 금융기관이나 신용평가기관의
심사기법은 아직 비과학적이다.

"멀쩡한 회사도 죽이는게 한국 금융기관이다"

국내에 주재하는 외국은행 간부가 한 말이다.

배우자(기업)가 바람났다(위험징조)는 소문만 믿고 이혼장을 남발하는
금융기관들.

최근의 부도사태로 이들 금융회사의 의처증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 정구학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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