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에 대한 대출은 이형구 당시 산업은행 총재가 주도한 것이
틀림없다"(한이헌 전 경제수석)

"한보철강의 후취담보가 대출액보다 1천3백억여원이나 초과했다.

이를 보면 외압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게 아니냐"
(한승수 재정경제원장관겸 경제부총리)

"처리과정만 협의했을뿐 대출압력을 행사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한보철강에 대한 "외압설"과 관련, 외압의 직접적 주체로 지목되는 전현직
고위관리들이 밝힌 내용이다.

외압의 간접적 주체로 지적되는 정치인들의 반응도 똑같다.

"맹세코 이번 사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최형우 의원)든가, "대명천지에서
그런일(대출압력)이 감춰질수 있다고 생각하는가"(김덕룡 의원)는 식이다.

한마디로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과 처리과정에서 외압은 없었으며 은행들이
알아서 결정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전현직 은행장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정치권의 외압은 전혀 없었다"(김시형 산업은행 총재)

"특혜대출이란 말도 안된다"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외부기관의 대출요청은 없었고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우찬목 조흥은행장)는 투다.

이형구 전 산업은행 총재만이 "당시 상공부로부터 한보철강이 외환적격
업체로 선정됐으니 대출을 해주라는 공문이 내려온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지만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들의 얘기를 듣노라면 한보철강사건의 주연과 조연들이 "뭔가 잘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연극의 결론 또한 뻔할 것이란 예감이다.

순전히 은행의 잘못이므로 은행장 몇명이 그만 두거나 감옥에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과정에서 "외압"에 시달렸던 은행장들은
사후처리에서도 또다른 "외압"을 받고 있는게 틀림없다.

또 다른 외압이 성공한다면 국민적 관심사인 한보철강사건의 의혹을 밝히는
것도, 한참 논의되고 있는 금융개혁을 성사시키는 것도 요원한 일이 될건
분명하다.

천하의 은행장들도 정치실세들 앞에선 고개를 숙이는게 관행이어서 하는
말이다.

하영춘 < 경제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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