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영국에서는 튜브 프레임으로 만든 소형 쿠퍼 자동차가 자동차
경주를 휩쓸고 있었다.

이 영향으로 영국에서는 레이서에게 튜브 타입의 경주용차를 만들어주는
조그마한 자동차 제작사들이 많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데이비스라는 레이서의 차를 만들어주던 토제로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스포츠카 보디를 제작해 온 전문가였다.

한번은 데이비스로부터 페라리와 똑같은 경주용 차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고 2인승 오픈 스포츠카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각종 자동차 경주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에 서레이라는 자동차 회사가 로열티를 지불하고 디자인을 빌려 1954년
AC 에이스라는 차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 차가 AC 코브라의 원조인 셈이었다.

엔진은 브리스톨사의 6기통 엔진을 사용했는데 값도 비싸고 너무 커 문제가
많았다.

한편 바다건너 미국에서는 한창 자동차 공업이 발전해 값싸고 성능이 우수한
엔진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유럽스포츠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던 터라 정작
본국에서는 인기가 많지 않았다.

이에 미국의 케롤 쉘비라는 레이서가 영국의 섀시와 미국의 엔진을 결합
시키는 아이디어를 냈다.

영국의 발달된 보디 제작 기술과 섀시 기술에 미국의 저렴한 고성능 V8
엔진을 얹어 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AC 제작 공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코브라라는
이름으로 자동차를 합작하자는 제의를 했다.

이로써 AC 공장에서 제작된 섀시와 보디는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보내져 완성차로 조립됐다.

이렇게 1962년 코브라 1호는 탄생했다.

이 차에는 4.2l의 V8엔진이 탑재됐는데 이것은 커다란 브리스톨 엔진의
단점을 보완하여 작고 콤팩트하면서도 값싸고 성능도 좋은 포드 엔진이었다.

처음에는 이로인해 쉘비-AC라는 이름으로 팔리다가 나중에는 포드-쉘비로
불리게 되었다.

영국 레이싱의 오랜 서스펜션 기술과 미국의 고성능 엔진이 결합돼 핸들링과
성능은 당대 최고로 일컬어졌다.

시속 1백km까지 가속하는 시간이 6초내이고 최고시속 2백22km로 당시 가장
빠른 자동차로 자리매김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브라는 1968년에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미국시장에서 배기가스규제에 저촉돼 더이상 판매를 할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1970년대 모조품만이 이곳 저곳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후 30년이 지난 1984년 영국의 오토크라프트사에 의해 60년대 당시 코브라
를 만들었던 같은 장비를 이용, 마크IV라는 이름으로 다시 복원됐다.

AC 코브라는 근육질의 단단한 보디와 파워풀한 성능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개발 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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