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옷을 걸쳤어도 엉뚱하게 무식하고 교양없으며 비문화적인
졸부들도 많이 있다.

거기에서 파생하는 교육을 많이 받은 자녀들과의 많은 문제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말쑥한 신사들중에도 중학을 겨우 면한 무식한 농군출신의
신흥 졸부도 많다.

아무튼 그가 입은 상의는 휠라의 것이고 바지는 자니 베르사체쯤 되는것
같고 구두도 구치쯤 되는것 같다.

부인도 의상은 아주 고급의 밍크코트에다가 비로드의 상의가 목만 나와
있어도 그것은 샤넬이나 뭐 그런 최고가의 패션 옷임을 눈어림으로 금세
알것 같다.

돈이 사람을 움직이는 집구석인가? 공박사의 빠른 센스가 소리나게
채점을 한다.

"나는 정신병원에 올 일이 없대두요"

그러자 남편이 그녀를 우격다짐으로 의자에 메어꼰듯 주저앉힌다.

매우 폭력적이고 무지막지한 풍경이다.

"이 여자의 이 술마시고 말 안하는 병,이것도 일종의 병이 아닐까요?
선상님"

그의 말씨에서 말죽거리의 배추장사 시절의 사투리가 막 튀어나온다.

"허구헌날 술에 쩔어서 내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부인, 알콜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줄 아십니까? 빨리 고쳐야 됩니다.

그냥 두면 폐인이 돼요.

자식들도 있고 살만 하신 분들 같은데, 안주인이 알콜중독이 돼봐요.

그 집안은 아이들하고 어떻게 되지요?"

공박사는 쉽게 잡히는대로 그들 부부사이에 가로막고 나선다.

"부인 부군되시는 분의 말씀이 맞는다면 부인은 왜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 저하고 술을 끊을 수 있도록 조언을 받고 면담을 하고 진료를
받아서 빨리 술을 끊도록 하셔야 됩니다"

그러자 박춘희는 무엇이 그리 심화가 틀리는지 땅만 내려다보고 가만히
있다.

죽겠다는 것인지 살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날 잡아잡수 하는 것도 같고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같고 알쏭달쏭
하다.

공박사는 재빨리 판단을 내리면서 남편에게 말한다.

"부군 되시는 분께서는 밖에 나가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부인과 제가
대화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십시오. 당신 그 쓸데 없는 소리해서 내 체면 깎지 말고 술끊을
의논이나 드려.

정 그대로 술을 마시면 나는 당신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거야.

혼꾸멍을 내서 술미친개를 갖다 버리든지 하겠어.

병원은 우리 동네에 있는 병원이야.

쓸데 없는 소리 안 나가게 함부로 입놀리지 말아"

그는 사뭇 때려 죽일 수도 있다는 듯이 폭력적인 엄포를 놓고 문을
조심스레 여닫고 나간다.

"선상님, 잘 부탁합니다"

그는 절까지 깊숙이 한다.

조금 냄새가 난다.

뭔가 비겁한 데가 있다.

공박사는 오랜 경험으로 이런 경우 어떤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