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에게!

썰렁한 계절에 노동법 한파까지 찾아왔군요.

생산차질이 3조원이나 된다 합니다.

이런 사태가 계속된다면 우리 경제는 올해 파탄에 이를 것이 분명합니다.

경쟁국에서는 한국 두드리기가 기승이니 나라의 장래가 크게 염려됩니다.

이점 K형도 같은 심정이라 생각합니다.

나라걱정을 같이 하면서도 왜 우리가 이렇게 K형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싸움을 하여야 하는 것인가요.

오해가 있다면 풀고 감정의 골이 생겼다면 메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과 같이 활기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은 심정에서 이 글을
써봅니다.

두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리해고제와 복수노조문제입니다.

정리해고가 고용불안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전적으로 오해라고 생각됩니다.

정리해고보다 정확히 말해 고용조정은 오히려 대량실업을 예방하고
장기적으로 더욱 많은 일자리를 창출시키기 위함입니다.

더욱이 이번의 개정노동법은 기업이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 그것도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서 하게 돼 있습니다.

한때 슈퍼경제강국의 자리를 일본에 넘겨주어야 했던 미국이 와신상담의
노력끝에 지금은 유례없는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오늘의 영광과 국민적 자신감을
회복하는데는 80년대에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량실업은 커녕 완전고용상태라는 5%대의 실업률을
기록해 30년래 최고의 고용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새로이 창출된 일자리만도 1천만명이나 된다 합니다.

이런 공적이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클린턴대통령을 만든 것입니다.

세계경제의 또다른 중심세력인 일본과 독일로 눈을 돌려봅시다.

일본은 지금 취업 초빙하기라는 유례없는 고용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20대의 실업률은 7%를 넘어 젊은 세대의 가치관까지 바뀌고 있다
합니다.

일본 정부는 따라서 근로자 파견제도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등 획기적인
노동관련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경제기획청의 추산으로는 노동규제의 완화만으로도 연간 1천5백억엔
(1조2천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둘수 있다 합니다.

독일은 어떠합니까.

실업률은 지난해 10.6%까지 도달했습니다.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한 결과로 나타난 노조의 특권은
대량실업이라는 고통을 독일국민들에게 안겨줬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독일 정부가 엄청난 반발을 치르면서도 해고조건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습니까.

친노조입법과 사회보장제도로 노동시장이 경직된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10%이상의 고실업에 시달리는 실정입니다.

지난 91년 이래 유럽에서만 5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이렇듯 뻗어나가는 나라와 경제의 꼴이 말이 아닌 나라는 노동시장의
신축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있지 않습니까.

장래 대량도산, 대량실업이 닥쳐올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인데 노동시장의
경직성만을 고집해야 하는지, 아니면 유연하고도 신축적인 고용조정으로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보다 많은 복된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참으로 역사앞에 책임있는 선택을 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복수노조문제까지 얘기하겠습니다.

복수노조가 법제상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으려 하지 않습니다.

선진국가들의 경우 제도는 복수노조이지만 현실운영은 단일노조입니다.

그들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단일노조하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꼭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 해야만 할까요.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는 수십년동안 즐거워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복수노조도입을 위한 제도자체를 영구히 반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다할 준비없이 복수노조를 즉각 시행할 경우 지난날의 이른바
영국병에서 보듯이 영일없는 노노분규와 노사분규로 산업의 파탄을 가져올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과격노조의 등장이 우리사회체제의 와해까지 노린다는 일각의
주장은 기우라 손치더라도 성숙된 노사관계를 가진 나라에서는 모두
단일노조체제가 정착돼 있는 현실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K형도 아시다시피 미국의 AFL-CIO가 그렇고 일본의 렌고(연합)가, 그리고
영국의 TUC가 그렇지 않습니까.

종업원 전체의 규합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강력한 노조, 책임있는 노조가
기업별로 단일체제를 갖추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근로자를 위하는
노동운동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또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경영자 측의 불순한 노조분할.통제의
유혹에 가장 강력한 제어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K형! 장광설이 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정리해고제 도입, 복수노조의 3년유예는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고용창출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우리세대의 최소한의 책임있는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개정노동법을 둘러싸고 일고있는 안타까운 갈등과 마찰은 나라장래를
위해 이해와 협조로 함께 극복하여야 할 과제가 아니겠습니까.

이 겨울 우리들의 진통과 갈등은 21세기를 맞는 나라발전의 전화위복의
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근로자와 기업 국민 모두가 승자가 되는 새로운 경제사회 환경의 조성에
K형의 이해와 협조를 바랍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