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나 만리장성 같은 외국의 거대한 문화유산에 비해 우리 문화는
왜소하고 초라하지 않는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서해안
바닷가에서 성장했던 시절을 생각한다.

고기잡이를 떠나기 전 마을 사람들은 으례히 해안 절벽에 있는 당집에
모여 들었다.

요즘처럼 기상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이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당집에 들러 굿을 하면서 풍어와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하는
것 뿐이었다.

필자도 어른들 틈에 끼어서 우리 가족의 안전을 마음 속 깊이 갈구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그 당집은 허름하고 보잘 것 없지만 모든
주민들의 소망을 담고 있었다.

문화는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외형적인 단순 비교는
무의미한 것이다.

진정한 문화의 이해는 바로 문화에 담겨진 정신을 올바로 인식하는 데
있는 것이다.

필자는 10여년전부터 개인적으로 우리 문화유적을 취미삼아 답사하였다.

그런 가운데 마침 민속학자인 주강현박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4년전
주박사를 회장으로 하는 역사민속답사회를 정식 발족하게 되었고 보다
체계적인 문화 답사는 물론 뜻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2~3개월마다 한번씩 1박2일로 이루어지는 답사는 보통 5~6군데의
유적지를 둘러본다.

정식회원과 일반인 30~40명으로 이루어지는 답사팀은 먼저 현지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답사와 관련한 역사 및 문화적인 배경 설명을 듣는다.

이어 현지에서는 전문 민속학자가 동행하며 문화유적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저녁에는 답사를 바탕으로 세미나가 이루어 진다.

특히 답사에서는 현지 주민들에게 부탁하여 마련한 토속음식을 맛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현재 모두 14회까지 이루어진 답사의 주요 회원은 박경하 중앙대교수,
박순보 홍익대교수, 김기덕 건국대강사, 주경미 단국대강사 등 민속학자를
비롯하여 아동문학가 이상교.이규희.이영호, 작곡가 정근, 일러스트레이터
강인춘.이춘길.최달수.하기원 하원언 쌍둥이 형제, 그리고 사업가 박인묵
등이 있다.

우리 문화를 소재로 솔거나라 그림책 시리즈를 출판한 필자는 올해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기획중인 영어, 불어, 중국어, 일어 등의 4개
외국어판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 호랑이"가 우리 것을 해외에 알리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