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옷을 아주 고급으로 샀고 차도 고물이지만 쩨로 굴리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는 황태자의 모습을 꾸미고 다녀요.

일주일에 한번 파출부가 와서 소제를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가요.

어떤 때는 아주 멋진 생활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노동이래야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만 하면 되니까"

그는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자기의 귀족적인 생활을 뽐내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리머리를 저으면서, "하지만 저도 빨리 죽기는
싫어요.

이런 생활을 하면 빨리 죽겠지요.

아직은 젊으니까 괜찮지만"

그녀는 책상을 톡톡 친다.

"지영웅씨, 꿈 깨세요.

에이즈뿐 아니라 더 지독하다고 할 수 있는 성병도 있어요.

헤르페스라고 알아요.

빨리 병증세가 나타나지도 않지만"

"저도 알아요. 어느 형이 걸렸어요.

입술이 헐고 정신없이 더러운 병이더군요"

"그 병은 잠복기간도 길고 후유증이 심해요.

임질 매독보다도 무섭지요.

성병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죠. 그 생활에 죄의식이 없어진 지영웅씨는
정신적으로 알콜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정력낭비는 폐암같은 병도 몰고오죠"

"끔찍한 말씀 마십시오. 나는 담배고 안 피우고 술도 많이 안 마셔요.

제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만 해주세요, 제발"

"더 들어요. 백옥자 여사에게 배신당하고 편두통이 생겨서 내 병원에
왔지요? 고쳐야 됩니다.

생활을 고쳐야 돼요.

예를 들어 설명하죠. 당신은 에이즈에 안 걸렸다 하더라도 상대하는
여자가 걸렸으면 당신도 속절없이 걸리는 것이죠. 그렇죠?"

"네 박사님. 저는 정말 병원에 오면 너무나 유식해져요.

그러니까 감기처럼 무서운 병에 노출되어 있는 제 생활을 고쳐야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빨리, 하루라도 빨리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의 애인들을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코치월급만 가지고도 살 수 있게 정리할 것은
하십시오"

지영웅은 바늘에 찔리는 아이처럼 움찔움찔 몸으로 반응하며 그녀의
카운슬링에 순종한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그 중에 한사람은 남겨 두어야겠다고 빠른
계산을 한다.

일주일에 한 여자쯤은 괜찮지 않을까?

"지영웅씨, 내 말에 동의한다면 여기다가 반성문을 써요.

그리고 사인하고. 의사와의 약속을 지켜봐요"

그녀는 지영웅의 변화에 스스로가 깊은 감동을 받으며 부드럽게 웃는다.

"각서 같은 것 안 쓰도고 맹세할 수 있어요"

지코치는 두손을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빌듯 중얼거린다.

"이 불쌍한 지영웅을 제발 붙들어주세유. 부처님, 다시는 나쁜 짓을
안할게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