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때문에 온나라가 들끓고 있다.

여기에는 노사 쌍방의 밥그릇싸움과 정치권의 이해,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이 뒤얽혀 있다.

모두들 원점으로 돌아가 나라의 장래를 위해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노동법을 고쳐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정부의 개정방향도 큰 흐름으로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수단 방법에 잘못이 있었고 내용면에서 부분적으로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점이다.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정부는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

지금 노동법을 고치려는 것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산업경쟁력을 회복
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법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가 완전고용단계에 들어서서 구직난시대에서 구인난시대로 이행함에
따라 노사관계도 달라져야 한다는 시대상황의 변화를 유의 하여야 한다.

그러한 문제점으로는 두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완전고용단계 이후의 경제성장은 노동력의 유동성, 즉 노동력이
저생산성부문에서 고생산성부문으로 얼마만큼 활발하게 이동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실업시대에는 경제성장이 실업인구의 고용증가에 의해서 주도되지만 완전
고용이 되면 고용증가는 정지되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고용노동력의 생산성
증가에 의해서만 창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 생산성증가는 노동력이 남아도는 저생산성부문에서 고생산성
부문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단순노동
이 감소하고 고급노동이 증가하는 구조고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력과잉부문에서는 노동력을 배출하고 이것을 신규사업부문에서
흡수하도록 촉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력순환이 되도록이면 해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근로자
들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또 일단 배출된 인력이 잘 흡수
되도록 재훈련시키고 매개하는 역할을 정책이 맡아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구인난시대에 접어들면 근로자들의 지위향상은 노사간의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노동시장의 자유경쟁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사실이다.

구직난시대는 저임금시대이며 노동시장에서 사용자가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함으로써 임금인상 등 복지향상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구인난시대가 되면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사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이다.

이때 근로자들의 집단적인 투쟁은 장기적으로 보면 어차피 돌아오는 것을
앞당겨 찾아먹는 다시말하면 가불받는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이때의 노동운동은 투쟁보다도 협동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공정경쟁을 보장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이 많을때 더 일하고 없을때 쉬도록하는 변형근로제다.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여 도산위기에 당면했을대 고용을 조정토록하는
정리해고제와 파업이 있을때 특정조건하에서 일시적으로 대체인력을 쓰도록
하는 대체근로제 등은 필요한 것이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책
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인가.

첫째로 수단방법에 잘못이 있다.

야당이 새해 1월중에 표결처리를 약속까지 했는데도 새벽에, 그나마도
야당의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날치기로 처리한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적 수법이다.

과거같았으면 이런 방법이 한번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신한국당은 당연히 이것을 국민들이 체념하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체제가 아닌가.

두번째는 내용상의 문제인데 노개위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정리해고제 등 다른 것들은 모두 선진국을 따라간다고 하면서 왜 복수
노조와 공무원 및 교원의 단결권은 유보하는가 하는 근로자들의 불만이
당연히 나오게 돼있다.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은 당분간 제한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상급단체
복수노조는 허용해야 옳다.

이것을 허용하면 큰일날 것같이 생각하지만 이미 있는 실체를 인정해주는
것 이상의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여당 안에서 조차도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통과
시켰던 사항아닌가.

이와 더불어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대체근로제 등을 시행할때 이것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직장을 잃는 사람들에게 재취업을 알선하고 재교육
하는 조직적인 행정서비스제공 등 보완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번 저지른 잘못은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여당은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노동법시행을
유보하고 국회에서 재론해야 옳다.

그리고 야당은 시대에 맞는 노동법이 되도록 상급단체의 복수노조를 허용
하고 정리해고제 등의 지나친 남용을 규제하는 선에서 정부안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노개위안으로 되돌아가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처리해주기를 촉구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