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한 의학잡지는 오른쪽 뇌에 중풍이 온 환자의 경우 자신의
마비증상을 부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보고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마비된 왼쪽 팔을 움직여보라고 하면 환자는 왼쪽 팔이
자신의 팔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놓고 간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부정의 사례다.

이와같은 증상은 오른쪽 뇌가 외부변화를 감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반면
왼쪽 뇌는 이미 유입된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른쪽 뇌에 마비가 올 경우 외부변화를 감지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팔이 마비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왼쪽의 뇌에 저장된 기존의 지식, 즉 왼쪽 팔이 정상이라는 것을 사실
이라고 고집하기 위해 환자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풍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풍은 기업도 맞을 수 있다.

오른쪽 뇌에 감지기능이 마비된 채 왼쪽 뇌에 저장된 기존 관행만 고집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습관적으로 책임회피성 변명만 되풀이한다.

회사의 영업부는 개발과 생산의 비효율성을, 생산부는 영업 예측의 부정
확성을, 노조는 사용자를, 사용자는 노조를- 모두 끝없는 현실부정과 책임
전가만 고집하고 있다.

왼쪽 뇌에 저장된 기존의 구습을 그대로 끌고 가기 위한 어처구니 없는
논리만을 반복한다.

혹자는 이러한 부정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강압적인 기업경영이 불가피
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이제는 매출이익률 불량률과 같은 하드웨어적 측면
에서 탈피, 가치관 조직문화 비전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측면에 관심을 돌려
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GE와 같이 시스템에 의한 관리가 완성돼 있는 기업에서는 타당한
논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업경영의 기본이며 당연히 갖추어야 할 하드웨어적
측면조차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지식정보를 수집-평가하는 제도가 너무 미약한 것이다.

조직에서의 정보는 거래 및 업무수행의 부산물로 발생하기도 하며, 의사
결정을 위해 정보를 창출해야 하기도 한다.

많은 기업들이 부산물로 발생하는 정보조차 수집-보관하는 것에 너무
소홀한 경우가 많다.

지식 정보 창출은 물론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모델별 매출 데이터, 정확한 원가 데이터와 같은 기업경영의 기초자료가
없다는 것은 좌절과 실패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초 데이터가 없으니 조직 환경변화와 부서별 문제는 즉시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의 심각성은 오른쪽 뇌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지식정보를 기초로 모든 기업활동의 효율 및 효과성을 평가하는 시스
템이 없는 점도 문제중의 문제다.

즉 부서의 업적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 왼쪽 뇌에 저장되어 있는
기존의 성과평가는 그대로 남아 구습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평가시스템이 미비되어 있으니 부서의 비효율성 은폐와 업무증대를 교묘
하게 회피하는 기업문화가 만연될 수 밖에 없다.

이제 현실부정과 책임회피의 독소적 기업문화를 근절하고 기초데이터 DB
구축에 나서야 할때다.

그리고 이 DB를 토대로 하여 객관적인 성과평가를 실시하고 문제의 위급
성을 즉시 최고경영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급히 보강하여야 한다.

요즈음 전반적으로 수출의 판매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비용은
날로 증가되고 있다.

기업이 생존하기위한 전략으로 생산의 외주화와 해외이전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사내 생산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보조 및 간접부문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제품단위당 원가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되고 있다.

기업들이 보조 및 간접부문의 원가절감을 위해 다운사이징과 같은 극단적
처방을 채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정리해고제 등의 도입으로 근로자들이 직업안정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간다.

노동계가 이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상 정리해고제가 남용될 소지는 거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더욱이 정리해고제 등이 제도적으로 도입됨으로써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높아지고 따라서 기업의 생산성이 증가되어 경쟁력이 확보되면 더많은 고용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물을 단선적으로 또는 2분법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그러한 근거하에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접근을 일삼는 것은 독을
깨뜨릴 우려마저 있다.

니체는 껍질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고 했다.

뱀은 강인한 동물이지만 가시덤불이나 돌밭을 기다가 상처가 나면 껍질을
벗을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도 낡은 껍질을 벗지 못하면 자신의 틀에 갇혀 죽게 된다.

변신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변신을 하려 해도 시스템의 지원이 없으면 빛을 발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좀 강하게 표현하자면 구태의연한 부정적인 문화요소도 결국은 시스템
부재의 산물이다.

교통위반을 해도 안잡힌다면 다시 위반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공정한 시스템이 없는 곳에 건전한 의식이 있을 수 없다.

이제는 오른쪽 뇌의 변화감지에 따라 왼쪽 뇌의 기존 틀이 바뀌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할 때다.

기업들이 중풍 맞지 않게 할 예방책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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