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몸에 좋다는 것에 민감한 사람들은 드물다.

그것이 불로장생약쯤 되고 보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불로장생약이 늙지 않고 오래 사는 육체의 삶에 기여한다면, 영혼의
영원한 삶에 기여하는 것은 종교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쉽게 낮선 사이비종교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드물다.

따지고 보면 북한체제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집단일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무엇을 먹으면 몸에 좋고 또 어떤 것을 믿으면 자신을
구원해주는 정신의 지주가 될 것인가 하는 것에는 열광하면서도, 무엇이
몸에 해롭고 무엇을 믿는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 일인가 하는
것에는 무심한 것같다.

아무리 몸에 나쁘다고 매스컴이 떠들어대도 며칠만 지나면 쉽게
잊어버린다.

하기야 요즘 마음놓고 먹어도 된다는 것이 있기나 한가?

무엇이 해로운가를 너무 깊이 생각할수록 정신건강에 해로울 뿐이다.

불로장생약이 나왔다고 난리들인데 물론 사람들은 그약의 좋은 점에
열광한 나머지 해로울 수도 있는 어떤 점들은 대충 눈감을 것이다.

우리가 몸에 좋다는 것에는 무엇이든 열광하는 것에 반해 미국인들은
몸에 나쁘다는 것에는 병적으로 질색을 한다.

두서너자리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담배를 피워도 그 담배연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신경이 쓰여서 밥을 못먹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이다.

내짧은 생각으로는 지나치게 자신의 몸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병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오래 살고 싶다.

그러나 왜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삶의 미학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로래 살 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

오래 살아서 재물을 축적하느라 권력을 탐하느라 아웅다웅하는 시간들만
연장된다면, 120년의 수명이란 이 소란한 세상을 더욱 엉망진창으로
만드는데 기여할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늙음,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아름다운 뒷모습-머지
않아 그런 단어들이 곧 그리워지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