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트로이트=이근기자 ]

자동차의 정형이 사라지고 있다.

세단과 SUV(Sports Utility Vehicle) 미니밴 경트럭의 구분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최근 몇년사이 세계 각지에서 열린 모터쇼가 저마다 제시해온 차종은
미니밴.

그러나 올해 디트로이트 오토쇼(7일~20일)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세단-
SUV-미니밴-경트럭의 기능과 외관을 합쳐버린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를 대거
선보이고 있다.

"혼합형 차량"의 등장이다.

포드의 알렉스 트로트만회장이 "턱시도를 맨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닮았다"고 자평한 "링컨네비게이터"가 대표적인 차종.

5.4리터 SOHC 8기통엔진을 장착한 이 차는 2백3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는
지프형이지만 승차감과 인테리어가 고급세단을 무색케 한다고 포드는 설명
하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정부로부터 최고의 안전도를 나타내는 5개의 별등급을 받은
윈드스타와 익스플로러 익스페디먼트 에어로스타 등의 SUV형차를 대량으로
선보였다.

일본업체들도 앞다퉈 SUV개념의 차량들을 출품했다.

도요타 RAV4, 혼다 CR-V, 미쓰비시 몬테로스포트...

자동차메이커들은 승용차의 장점인 저연비, 안전장치, 승하차의 편리함에
다목적자동차의 장점인 비포장도로 주행능력, 다기능성을 합쳤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본 스바루가 레가시를 베이스로 내놓은 SUV 컨셉트는 상시4륜구동(AWD)과
같은 지프형자동차의 장점과 왜건형자동차의 장점을 완전히 합쳐놓은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다.

크라이슬러가 내놓은 닷지 사이드윈더 컨셉트카는 닷지 바이퍼와 같은
오픈 스포츠카와 닷지 램과 같은 픽업 트럭을 섞어놓은 스타일이다.

크라이슬러 차량개발담당 토마스 게일 부사장은 "이제 본격적인 온로드
(포장도로) 트럭을 디자인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SUV와 승용차를 구분하는 기준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미카엘 바서만
메르세데스벤츠 북미법인 사장).

이번 디트로이트 오토쇼를 지켜보는 자동차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SUV는 팬시카를 닮아가고 승용차의 모습에는 경트럭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이같은 추세에 대해 포드의 잭 텔내크 디자인담당부사장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자동차에 대한 욕구도 기능성.안전성.환경친화성 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하다못해 "스포츠카의 전설"인 포르쉐조차 다목적자동차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포르쉐의 벤델린 비데킹 회장은 7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는 99년까지는
다목적차량 시장에 진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차량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바서만 사장은 "올 가을 선보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다목적자동차 M클라스
는 안전성이나 편의성에서 세계 최고급 승용차들과 좋은 경쟁 상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독일 카만사의 컨셉트카 "오픈 뷰"의 경우 외관이 다소 투박해 "최악의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경트럭과 미니밴의 기능을 합치고 심지어 최고급
리무진의 이미지까지 가미한 새로운 시도라는 찬사도 한 몸에 받았다.

한국업체로는 유일하게 참가한 현대자동차의 이형근 수출마케팅실장은
디트로이트오토쇼를 둘러본 뒤 "제대로 된 SUV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현대는 99년에는 이미 선보인 컨셉트카 HCD-III를 기본으로 새로운 개념의
SUV를 미국시장에 진출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승용차 수준의 승차감과 조종성에 경트럭이나 미니밴, 다기능성을 가진
SUV가 확고한 영역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시장에서는 이런 개념의 자동차들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는 것을 디트로이트오토쇼는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승용차 분야에서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국내업체들에게는
또다시 넘어야할 높은 벽이 쌓여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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