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부터 남한 기업들의 북한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 역시 투자 가능성을 직접 타진하기 위해 LA에서 서울을 거쳐 북경에
도착, 약속한 북한 국영무역회사인 "은하무역"사장을 기다렸다.

이날의 만남은 임가공문제로 상담하기 위해 파리의 북한대사관을 통해
이미 두어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원자재를 한국에서 들여다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 물건을 만들어 유럽에
봉제품을 수출한다는 구상이었다.

남북이 갈라져 거의 반세기 가까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던 한민족을
타국에서 만난다니, 한편 감격스럽고 약간은 긴장된 마음이었다.

약속시간이 30분정도 지나서야 북한 여성 두사람과 명함을 교환할 수
있었는데, 은하무역사장은 아니고 부장과 그의 부하직원이었다.

북측이 요구하는 봉제공임은 방글라데시에서 유럽시장을 위해 지불하는
공임보다 높았다.

그러나 어차피 장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서 기타 무역거래를 위한
일반조건등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그들은 우리가 원.부자재를 모두 한국에서 수배해 북한에 가져 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는 아직 원자재인 원단은 물론 부자재인 봉사.단추.심지등도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제무역에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조달해 주기는 번거로우나 상황이
그러하다면 협조하기로 했다.

또하나의 문제는 북한에서 임가공한 제품의 품질과 납기 및 검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납기는 어겨본적이 없으며 동족끼리니까 한번 믿고 해보자고 그들은 말했다.

제품검사는 비자발급상 한국인은 안되고 외국인이나 해외교포여야만 한다는
주장이었다.

수송도 문제였다.

평양근처 봉제공장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컨테이너편으로 남포를 통해
인천으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유럽으로,이럴경우 부산에서 재수출을 하게 될
형편이어서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용고무역 네덜란드본사까지 수송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았으나, 러시아 사정상 수송중 도난이 심하고 수송기간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내가 들은 통일원측 귀띔은 북한 노동의 질은 한국에 비해
그리 손색이 없으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국가가 수출노동자의 초과임금을 국가수입으로 잡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북한에 진출해 있는 네덜란드계 ING은행의 충고는 북한에 대금을
지불할때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조언도 있었다.

우리는 상담을 통해 북한은 자유로운 국제무역상대로는 아직 이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수출신용장(LC)수용체제등 무역의 제반여건이 제대로 도입안돼 우리의
임가공계획은 일단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상담을 끝내고 호텔의 중국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북한 비즈니스우먼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그들은 북한체제에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파 병원에 가면 국가가 모든 비용을 감당해 주는데 남한에는 병원입구에서
부터 돈이 들지 않느냐고 말했다.

듣던대로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가장 큰 문제로 느낀 것은 통일이 될 경우 그들은 아직 자본주의에 적응할
능력과 자신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황용오 < 네덜란드용고 유럽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