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추운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매서운 추위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는 것은 멀리 북쪽에서 날아오는
겨울 철새다.

한반도에는 먹이가 풍부한 갯벌과 강 하구가 발달해 서해안에는 철새
도래지가 많다.

여러곳의 철새도래지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해안이
아닌 내륙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철원평야이다.

철원평야에 매년 철새가 찾아오는 이유는 먹이가 풍부한 넓은 평야와
나지막한 산, 얼지않는 샘등 철새들이 겨울을 보낼수 있는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 오랜세월 좋은 서식환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발굴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우리
역사의 시발점 부근에서부터 조상들의 포근한 생활터전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후삼국시대에는 궁예가 정한 도읍지였으며 고석정 삼부연등 절경이 많아
예로부터 시인묵객(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6.25전쟁이후 이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백마고지
노동당사 전쟁유적지 전망대등 안보관광지로서 우리에게 더 친숙해졌다.

비무장지대의 보전.이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게 되면서 언론을
통해 여러가지 정책구상과 계획들이 심심치 않게 발표되고 있다.

이에따라 철원평야일대가 겨울철새들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될뿐 아니라
그간 각종 규제및 제약으로 불편함과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한결 주름이 걷히게 되는 풍요의 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흐뭇한 기대에 젖어있는 사이 약물먹는 기러기와 함께 논두렁에 숨져있는
검독수리의 사진이 배달된다.

죽은 새의 날깃죽지가 몹시 크게 보이며 생태계 보전구역 지정을
반대한다는 모국회의원의 분노한 고함소리속에 숨져간 검독수리의 아픔과
이를 바라보고 있는 인간들의 슬픔은 왜 다르고 어느쪽이 더 안타까운
것인가를 조용히 자문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