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고비용 저효율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독감을 만나면 능률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기 경기변동의 독감 정도가 아니라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경제 활력마저 상실해 가는 조로화 현상이다.

또 분수넘친 과소비와 전반적인 구조조정 지연까지 곁들인 증증으로
진단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 비용에다가 경기불황,
주각폭락, 과소비, 국제수지 적자팽창, 외채급증 등의 음침한 늪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환율 불안감, 물가 불안감, 정치 불안감, 대북 불안감 등이 겹쳐
경제 위기감 마저 감돌고 있다.

우리 경제 성장의 원천이었던 풍부한 인력과 값싼 노임은 이제 끝났다.

우리 나라 고유의 독창적인 개발모뎀이나 큰 고뇌없이도 우리가 쉽게
추종할 수 있었던 일본이나 유럽의 경제발전 패러다임도 모두 한계에
부딪혔다.

WTO 및 OECD의 가입과 APEC의 주도적인 역할로 우리 나라는 더이상
개도국의 유리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제품들이 해외에서 중국과 동남아 제품에게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선진국에겐 품질 경쟁력에서 밀려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경제력은 아직 개도국인데 씀씀이는 선진국 수준에
달한 과소비행태로서 적자경제를 쉽게 면할 수도 없다.

여기에 칡넝쿨처럼 뒤얽힌 정부규제와 비효율적인 공공부분, 전근대적인
금융산업, 관료주의적인 대기업,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는 집단 이기주의,
경제지도력의 결핍 등 내재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누가 우리 경제를 "대형불황"이라 했던가.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얼음처럼 냉철한 현실분석과 뜨거운 국민의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문제를 정도로 풀어나가면 좌절하거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아직 풍부한 인적자원과 교육의 열기, 남에게 뒤지지 않는
근면성,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개척자정신이 남아있다.

하지만 버릴 것도 많다.

첫째 개도국으로써 보호받은 시장과 값싼 노동력 그리고 안이한 운영의
"과거인습"을 버려야 한다.

우리 나라는 더이상 개도국이 아니다.

값싼 노동력은 끝났다.

그리고 세계는 이제 무한경쟁시대이다.

둘째 선진국 기술모방의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구미선진국을 맹렬히 모방해오던 일본이 한계에 도달했고, 새로운 기술을
호락호락 넘겨줄 선진국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상품의 사이클이 3~4년
단위에서 몇개월로 바뀌어 모방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셋째 부동산과 주식가격 상승에 의존했던 기업들의 경영전략도
포기해야 한다.

거품경제는 더이상 지탱하지 못한다.

지구촌은 이제 불꽃튀는 생존경쟁의 장으로 변했다.

넷째 국민은 개방의 피해의식을 떨쳐 버려야 한다.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 WTO와 OECD등에 가입하고 국내시장을 개방하는
것이지 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다.

다섯째 정부는 경제의 "보모" 역할을 끝내고 획일적인 행정지도를
버려야 한다.

순수한 시장경쟁 메커니즘만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의 고정관념과 인습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고 세계를 향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하고 효과적인 추진전략을 세우는게 필요하다.

첫째 독창적인 한국형 경제발전모텔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적인 것을 밑바탕에 깔고 세계시장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신한국형
경여의 창출만이 21세기 우리 경제를 키워 줄 것이다.

둘째 과감한 행정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를 실현해야 한다.

성장한 자식에겐 부모나 보모의 역할이 줄어야 하듯이 우리 기업들도
이제 시장경쟁 체제에 내 맡릴 때가 됐다.

유럽이나 일본의 행정개혁 몸부림도 이런 맥락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해외시장의 특수(특수)를 찾아나서야 한다.

우리는 60년대 중반의 경제적 어려움을 베트남 특수로, 70년대 중반의
고비는 중동 건설특수로,그리고 80년대 중반의 위기는 3저호황으로 극복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 러시아 동구권 남미 등 세계의
구석구석을 찾아보면 위기극복을 위한 멍석자리는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넷째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기술혁신 및 인력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쟁국들보다 높은 고물류비용을 줄여야 하고 선진국과 맞겨룰 수 있는
신기술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다섯째 기업들은 정보기술을 장악하고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뒤쳐진 모방아나 고답적인 대량생산 낡은 정보기술로는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기업의 명확한 비전과 전략수립,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조직과
운영체제, 이를 뒷받침하는 전산시스템,그리고 최고경영자의 탁월한
리더십이 요망된다.

여섯째 소비자는 근검절약으로 과소비를 줄이고 국산품을 애용하여
우리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비자주권시대를 맞아야 소비자들이
사치성 소비나 외제에 치우치면 경제회복은 어렵다.

일곱째 근로자의 자제와 노사화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생산성을 앞지른 노임상승은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고용기회를 줄인다.

쇠퇴하던 미국 경제를 회복시킨 주역은 근로자들이요.

노사화합에 의한 공동연구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타산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은 개방의 피해의식과 불황의 책임소재 찾기에서
벗어나 한번 더 에너지를 모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제 한국 경제는 지팡이 없이 우리 발로 굳굳하게 일어서야 한다.

한국적인 우리 모텔과 우리 기술, 우리의 단결된 힘과 노력으로 독창적인
경제틀를 짜서 선진국 대열에 떳떳하게 서야 할 때가 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