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한 사내가 얼어죽지않고 겨울을 나기위해서는
교도소에 가는 것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땅한 죄목을 찾던 그는 어느날 저녁 경찰서 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대통령은 돌대가리에 거짓말쟁이다"라고.

예상했던대로 즉각 체포돼 법정에 선 그에게 판사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깜짝놀란 이 불쌍한 사내는 정중히 항변했다.

"판사님 법정최고형이 6개월인 국가원수 모독죄에 종신징역이 왠말입니까"

판사님은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의 행위는 국가원수 모독죄가 아니라 국가기밀 누설죄에 해당된다"고.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비아냥거렸던 우스갯소리다.

치적이 훌륭했건 그렇지못했건 간에 최고통치권자를 비아냥거리거나 우스갯
감으로 삼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비스마르크이후 최장수 독일재상이자 통일의 위엄을 달성한 콜수상을
대상으로한 우스갯시리즈는 국내에서도 한권의 책으로 번역 출판될 정도로
많다.

콜수상과 레이건대통령이 모두 죽어 저승엘 갔다.

천사는 레이건에겐 골더 메이어 이스라엘수상과, 콜에겐 마릴린 몬로와
한방을 쓰도록 했다.

레이건이 항의하자 천사가 말했다.

"마를린 몬로에게 벌을 준 것이니 양해해 주시게"라고.

콜이 못생겼다는 뜻으로 비아냥거린 것이지만 그런대로 애교가 있어 본인이
듣더라도 그렇게 불쾌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권자를 대상으로한 우스갯소리는 그의 지적수준을 평가절하하는
내용들, 본인이 들으면 기분나쁠 것들이 역시 주종이다.

콜수상과 그의 각료들이 비행기를 타고가면서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좋아
할가"를 궁리 궁리했다.

마침내 콜이 좋은 생각이 났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1백마르크짜리 지폐 한장을 떨어뜨리면 적어도 1명은 확실히 기뻐
할 것 아닌가"라고.

한참후 한 장관이 10마르크짜리 10장으로 나눠 떨어뜨리면 더 많은 국민이
기뻐할 것 같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논의 과정을 듣고 있던 조종사가 말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전체 국민이 기뻐할 텐데요"라고.

이런 유형의 우스갯소리, 본인이 들으면 기분이 좋지않을 수도 있는 내용
이지만 지극히 은유적인 형태의 유머가 통용되는 분위기는 따지고 보면
통치권자가 그렇게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통치권자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사회에서는 그를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훨씬 직설적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 최고통치권자에 대한 존경이나 애정이 전혀 사라져버린 사회,
"자네 대통령 닮았구만"이라는 말이 "욕중의 욕"으로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루마니아의 경우처럼 "대통령은 돌대가리에 거짓말쟁이"라는 식의 직설적
표현이 등장하게 되는게 보통이다.

30여년만의 "문민정부"등장은 우스갯소리의 형식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
왔었다는 점은 되새겨볼 일이다.

콜수상의 유머시리즈와 유사한 YS유머 책도 나왔었다.

"이상재선생의 아호가 베트남이제.

아닙니다.

월남입니다.

이것 바래이, 월남이나 베트남이나 마찬가지 아이가"라는 누군가 만들어
냈을게 분명한 우스갯소리도 통용됐고 같은 경상도 출신인 내가 들어도
이상하기만한 "경제" "관광" 등 YS의 발음이 우스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큼 대통령에 대해 친근감과 정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고 그래서 취임초기 여론조사에서 80%를 넘는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문민이란 용어는 일본식 표현같아 다소 마뜩지않았지만, 어쨌든 그 내용상
종전의 정부와 분명히 다른 차별성을 지닌 새 정부의 출범에 기대가 컸던
것은 분명하다.

YS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4년이 지난 지금 국민, 특히 대통령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계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의 인기도에 대한 정부의 여론조사결과가 최근에는 별로 발표된게
없으니까.

다만 한가지 YS가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만 4년을 돌이켜보면
큰 성취를 거두었고 우리가 이룬 것은 민주와 정의와 번영이었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렇다.

개혁을 위해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를 실시했고 어떠한 명목의 돈도
받지않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킨 것으로 믿어지는 대통령에겐 어쩌면
가혹한 평가일 수도 있다.

왜 그런 평점이 나오게 됐을까.

"개혁"에 대한 반동인가.

아니면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 어느것도 원인이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지적이다.

너무 오랫동안 방향감각없이 "방황"을 거듭했기 때문에 YS정권의 정책기조
자체가 불분명해 짜증을 불러왔다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예측가능한 정책, 그 집행의 일관성 그 어느 것도 이루지못했다는 지적이다.

"두뇌"는 빌릴 수도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고 했던 대통령, 그가 너무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방향을 달리하는 두뇌들을 너무 많이 빌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주요정책들의 방향이 왔다갔다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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