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보세요 지영웅씨"

"그냥 이 지저분한 놈 그러십시오. 저는 지저분한 영웅이거든요.

영웅은 무슨 얼어 즉을 영웅입니까? 내가 영웅이 될 때가 있긴 있지요.

깔치 위에 군림할 때는 나는 칭기즈칸도 되고 나폴레옹도 되고, 그리고는
끝입니다. 끝나면 도로 개같은 놈이 되죠"

"지저분한 말을 쓰면 나는 지영웅씨의 진료를 거절하겠습니다.

깔치가 뭐예요? 같은 말이라도 골라서 쓰고 고운 말 점잖은 말을
써야지요"

공박사는 진정 이 입버릇 나쁜 친구의 아구통을 돌려놓고 싶다.

나가라고, 여기서 나가서 다시는 병원에 오지 말라고, 의사는 많다고
소리치고 싶다.

이 저능아는 오냐오냐 하면 함부로 막 나온다.

맷집도 좋아서 야단쳐도 그때 뿐이다.

가장 저질의 환자여서 조심하자 찍어 놨지만 성격이 불같은 그녀는
맞받아 싸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오늘 지금 그녀의 기분은 그 의처증환자가 아주 망쳐놓고 갔다.

도무지 우울하고 신경질나는 오후다.

공박사는 진료거부의 뜻으로 돌아앉는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점잖은 말씨만 골라서 쓰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양탄자위에 꿇어앉으며 큰절을 한다.

어처구나가 없는 것은 공박사다.

좀 지나치게 나무라기는 했지만 자기가 환자에게 큰절을 받을 이유는
없다.

"의사가 바라는 것은 그런 큰절이 아닙니다. 일어나 의자에 앉으세요"

어처구니 없는 짓을 그는 아주 눈깜박할 사이에 하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짓을 지지난주에도 했다.

"일으켜 주시지 않으면 언제까지 이러고 있겠습니다"

드디어 이 환자가 또 미친 것을 하는구나, 공박사는 부저를 눌렀다.

그 부저는 수위실의 김막돌 경비원에게 못되게 구는 환자나 갑자기 미친
짓을 하는 환자가 있을 적에 보내는 신호였다.

허겁지겁 경비아저씨가 달려 들어온다.

"이 환자가 혼자서는 일어설 힘이 없다니 일으켜서 의자에 앉혀주고
나가주세요.

그리고 도어밖에 그냥 서서 이 환자분이 돌아가실때 까지 계셔주세요"

"예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는 지영웅의 겨드랑이를 껴서 일으켜 세우면서, "이 사람아, 자네가
오면 내가 귀찮아 죽겠어. 기운이 없으면 업드리지를 말든가 하지 젊으나
젊은 사람이 이게 뭔가.

자네 도대체 몇 살이야?"

그는 능청을 떨며 지영웅을 의자에 일으켜 앉힌다.

그 수위는 다리를 부상당한 제대군인이지만 힘과 입담이 좋고 눈치가
아주 빨라서 정신신경과의 수위로서는 아주 안성맞춤의 직원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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