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수백년 내려온 세제를 개혁(tax reform)하고자
끝까지 밀어부치는 용기에 대해 미국의 의식있는 식자들과 언론은 워싱턴
대통령 이래 가장 용기있는 대통령이라고 칭송했었다.

미국의 고비용 저효율적 구조의 세제로는 미국의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선거때마다 선심으로 늘어지기 시작한 복지혜택적 세제를 누가 개혁해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누가 이 방울을 고양이 목에 다는 것인가의 문제만 남은 것이다.

레이건대통령은 감히 이 문제를 맡아 나섰던 것이다.

그는 우선 회사돈으로 점심때부터 취하도록 마셔대는 칵테일 비용을 세금
에서 공제하기를 거부하고 선심적 사회보장혜택 조항들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전국민적 저항과 의회의 반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같은 레이건의 용기있는 조치가 오늘의 미국 기업이 고비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생산성을 다시 회복하게 된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경제계, 실업계, 노동계, 재야 모두가 아킬레스건으로
취급하는 노동법을 한해를 마무리 하는 문턱에서 손을 대고야 말았다.

이 작업이 레이건의 용기있는 세제개혁과 맞먹는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노동법이 OECD가입과 함께 개정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법의 개정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그동안의 "개발독재"의 후유증
이라는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개발에 급급하던 시절 정부는 경제의 세마리토끼에 해당하는 성장, 안정,
자유-정의 가운데 성장에 전력을 쏟고 특히 국민의 자유-정의는 희생시켜
왔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의 쓰라린 식민생활과 6.25동란을 통한 처절한 좌절과
가난을 겪으면서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잘 살아 보자고 이를 악물고 뛰었다.

돈만 벌린다면 자신의 희생쯤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구세대는 물러가고 키워 놓은 파이를 나눠 먹자는 신세대가 대를
잇고 있다.

성장에 전적으로 쏟아붓던 집중력을 국민의 자유-정의와 경제의 안정에도
투입하지 않으면 우리의 성장은 서구처럼 "저성장-고실업률시대"로 진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우리의 잘 살아보자는 의지가 기적처럼 왔다가 기적처럼 사라져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GDP수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앞으로는 G7의 야물
딱진 꿈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덩치에 비해 내실은 형편이 없는게 문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국가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조사한
46개국 가운데 33위였다.

인도네시아가 25위에 위치한 것을 보면 가히 우리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독일의 "국제청렴기구"에서는 선후진국이 포함된 41개국 가운데 한국
정부의 청렴도를 27위로 평가했다.

부패에 관한한 선진국이란 얘기다.

홍콩 말레이지아 대만과는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OECD는 우리에게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정책을 수립 집행하고 정부의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즉 권력형 부패의 소비를 제거하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고통감수 의지가 우선 돼야 한다.

정부 부처간의 통폐합, 정부부터 솔선하는 명예퇴직의 과감한 확대와 잉여
인력의 정리, 고급인력의 처우개선을 통한 정부의 능력향상, 공기업의
매각을 통한 정부의 부담 축소 등 정부의 슬림화를 과감히 해야 국민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태가 기업에서 훨씬 먼저 일어나고 있으니 국민들은 정부의
어떠한 의지에도 신뢰를 주지 않고 있다.

정부는 아직도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성공담"에 취해 있는지 걱정스럽다.

이제는 옛날의 성장에서 희생 되었던 "자유-정의"를 보상해주면서 "안정"
된 경제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예컨데 노동권문제 부정부패문제 공해문제 고물가-고금리문제 개인적 삶의
질 향상문제 등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간 정부가 개혁의지로서 공직자 재산공개(권력형 부정부패 방지), 금융
실명제(건전기업풍토 쇄신), 부동산실명제(불로소득 퇴치) 등을 시행했으나
시행과정에서 의지가 희석돼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노동법 개정에서 만큼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지막으로 가진 개혁
의 기회인 점을 감안해서 우리가 가질 것은 가져야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함을 분명히 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제조업 임금 수준은 95년기준 평균 7.4달러, 싱가폴이 7.28달러,
대만이 5.82달러로 경쟁국에 비해 높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의 근로자들이 박탈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것은
법개정 이전의 어떤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바로 사회적 신뢰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채 경제문제를
기존의 논리로 풀려고 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이제는 정의가 올바로 서서 가난이 내탓이라고 수긍하는 사회, 부자는
당연히 부자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는 사회, 도둑 심보를 가진 자는 절대로
잘 살 수 없다는 정의가 먼저 자리 잡을때 우리의 2000년은 약속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강의 기적"이란 말에 스스로 도취해 온 것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야겠다.

기적은 없었다.

새해에는 한국인의 의지는 죽지않고 아직 살아있으며, 서로 감사하고
협력하여 제2의 도약을 재총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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