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백이 약을 받아가지고 병원을 떠난후 십분쯤 지났을까.

지영웅이 휘파람을 불면서 나타났다.

그는 급하게 진료실 도어를 노크하더니 "들어오세요"하기가 무섭게 골프
장갑을 벗으면서 고개를 푹 수그린다.

언제나처럼 사향냄새같은 콜롱의 향기를 풍기면서, 90도로 너무 정중하게
인사를 해서 공인수 박사는 쿡쿡 웃음이 나온다.

"박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그 레이디들은 12시안에 전부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자꾸 저에게
추파를 던지면서 시간을 끌지 뭡니까?"

"공치는 레이디들은 왜 그렇게 모두 지영웅씨만 보면 추파를 던질까?"

공인수 박사는 은근히 그를 힐란하며 비꼬아준다.

"아닙니다.

박사님 모르는 소리 마십시오. 과부들은 과부니까 내가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남편이 있는 유부녀들은 정말 이해하기 곤란해요.

노골적으로 저의 큰 코와 면적 넓은 보물대감을 바지위로 힐끔거리면서
섹시한 눈길을 보내거든요"

공박사는 그가 혹시 공인수 자신도 미망인임을 알아낸 것이 아닌가
가슴이 뜨끔한다.

그녀는 어디 가서든 자기가 싱글임을 숨기고 산다.

그리고 이 망나니 지글러 앞에서 더욱 엄격해지기로 했다.

"지영웅씨는 모든 레이디들이 자기를 먹이처럼 바라본다고 착각하는데
그거 그런걸 무슨 병이라고 하는지 알아요?"

공박사의 비비 꼬는 말씨에 비위가 상한 그는, "모릅니다. 그런데
내 말은 진짜래두요.

보세요, 이것이 그 증거물 입니다.

나미주단 김영신 사장 이 명함은 오늘 그룹으로 콜프친 마담중에 하나가
던져준 미끼예요.

보세요 박사님. 이 여자는 벤츠580을 타고 있더라구요"

그는 푸른색이 도는 고급스런 명함 한장을 그녀 앞에 내밀며 증거물을
보라는 듯이 우쭐한다.

그리고는 다시 왼손을 사타구니께로 보내고 주물럭거린다.

치사한놈! "제가 가짓말 하는 것은 아니지요?"

김영신은 공박사의 여고 동기동창이다.

사업도 잘 하고 잘 놀고 공치는 솜씨도 프로를 뺨치는 멋쟁이다.

돈도 많고 바람기도 세고 결혼을 두번이나 한 플레이걸이다.

"그 여자의 사업장이 바로 이 근처에 있대요.

잘 나가는 사장님인것 같아요.

나는 오늘 그 여자 처움 만났지만 우리 노는 황태자들 사이에선 소문이
난 큰손 이랍니다"

"지영웅씨, 본론으로 들어가요. 지저분한 농담은 그만 하구요"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며 근엄하게 묻는다.

"편두통은 다 나았어요?"

"조금 낫는것 같다가 백옥자를 생각하면 다시 도져요.

사뭇 송곳으로 이마를 찔러대는것 같은 것은 마찬가지예요.

주로 저녁 다섯시가 되면 무슨 귀신들린 것처럼 편두통이 와요.

박사님 나좀 살려주세요.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어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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