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는 개국초부터 강원도나 함길도 (함경도) 등 지방에서 무당과
백성들에게 신을 섬기는 세금으로 "무세"와 "신세포"를 거둬들였다.

그 본래의 의도는 무속을 근절시키려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국가가
무속을 공인한 꼴이 됐다.

그뒤 점차 "신세포"가 무시할수 없는 국고 수입원의 하나가 된 것을
보면 고대부터 신앙으로 자리잡아 뿌리가 깊었던 무속을 도저히 근절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또 겉으로는 무속을 금지했어도 기우제 성황제때는 무당을 동원했고
심지어 국립의료기관인 활인서에 의생과 함께 무당을 소속시켜 전염병을
치료하게 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증한다.

그런 속에서 무당들은 실제로 사제 의사 예언자 가무예능인의 기능까지
수행했다.

민속학자 장주근 교수가 "만기요람"에 전하는 "무세"액을 근거로 추산한
19세기초 순조대의 무당수는 등록한 무당 2천6백명을 포함해 5천여명이나
된다.

도성안의 무녀만도 1백81명을 헤아렸다.

일제의 식민정책,광복뒤의 근대화정책에 따라 미신으로 치부돼 발붙일
곳이 없다가 근래에 전통민속의 보존차원에서 보호되던 무당과 역술인들이
90년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무속인 조직인 대한승공경신연합회와 한국역술인협회는 전국의 무속인이
약 25만명, 역술인은 15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무속인 역술인이 40만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서점에는 1천5백여종의 점술.역술서가 널려있고 적중률이 채 반도 못되는
무속인들의 예언서가 판을 친다.

정치인 경제인 예능인들이 그들의 단골 손님이란다.

금년이 대선의 해이고 경제불황의 불안심리가 이어지면 호황을 누릴
사람은 무당이나 역술인 뿐일 것 같다.

아무리 한치앞을 예견할수 없는 급변의 시대에 살고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신비와 초능력에 빠져버리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할 세기말의 퇴행현상이다.

그것은 사회의 지도층이 할일이 못된다.

신비적 요소를 지닌 점복의 사회적 해독을 극복키위해 우리 선각자들이
기울인 노력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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