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 <브뤼셀 특파원>

우리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날로 활발해지고있다.

물건을 파는 지역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판매망을 구축하는 현지화작업을
북미 유럽 동남아 중국등 세계 곳곳에서 펼치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유럽에 대한 우리기업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져 이제 중국
멕시코등지를 능가하는 최대 투자대상지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은 영국 북잉글랜드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대한 전자복합단지를
운영하는등 서유럽에만 6천5백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다국적기업으로
발돋움했다.

LG그룹은 독일에 이어 영국에 생산거점을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대우그룹은 프랑스 북아일랜드 벨기에 폴란드, 그리고 현대그룹은 벨기에
폴란드등지에 현지공장을 세웠다.

현지화의 핵심인 기술연구소및 디자인센터를 설립하는 기업도 늘고있다.

유럽내 우리기업의 몸집이 이처럼 커지고있으나 이를 총괄하는 유럽본부를
세운 기업은 삼성그룹 하나뿐인 실정이다.

일본의 웬만한 기업들이 유럽본부를 갖고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유럽 각지에 흩어진 다양한 업종의 현지법인을 서울에서 원격조정하는게
불가능해진 지금 LG그룹등이 유럽본사 설립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곳에 유럽본사를 둬야할지 결정하기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위해 고려해야할 요소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현지 사용언어이다.

업무는 국제 공용어격인 영어를 사용, 별문제가 없겠으나 비영어권
지역에서는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된다.

삼성그룹이 복합 전자단지및 구주본사의 최적지로 영국 스페인 독일등
3국을 놓고 고심하다 영국으로 최종 낙점한 것도 영어사용권이란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LG는 전자단지를 결정할때 아예 영어권인 아일랜드와 영국을 놓고
저울질했으며 유럽본사 자리도 런던쪽으로 기운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우리처럼 외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일본도 주로 영국및 아일랜드에
그 진을 치고있다.

각국의 조세제도도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다.

법인세및 주민세등을 과도하게 부과하는 유럽에서는 가급적 세금부담이
적은 나라를 찾는것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여차하면 외국에서 애써 번돈을 몽땅 세금으로 빼앗기게된다.

물가도 곁들여 고려해야한다.

영국에 비해 벨기에 프랑스등은 전화요금이 2배에 이르며 물건을 사는데
내는 부가가치세가 20%를 넘는 도시가 많다.

조세및 물가부담은 결국 기업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현지인의 채용이 불가피한 지금 고용조건은 보다 중요하다.

영국처럼 노조설립을 기업주가 결정할 수 있는 국가가 있고 독일 스페인과
같이 근로자 보호법규가 엄격한 국가도 있다.

종업원들의 근로의욕과 자질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남부유럽은 임금이 싼 반면 근로자들의 자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바르셀로나 같이 임금수준이 높고 근로자들의
파업도 거의 전무한 지역도 있다.

이밖에 벨기에에 진을 친 미국 몬산토사처럼 현지공장이 밀집된 지역에
유럽본사를 설립하는것도 한 방법이다.

지리적 위치나 소속 국가의 이미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본사의 위치결정은 언어 조세제도 고용조건 물가 현지공장위치등
다양한 변수를 신중히 저울질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어느 도시가 유럽본사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것인가.

KPMG 언스트 앤드 영등 세계적 컨설팅업체들은 런던 프랑크푸르트
바르셀로나 파리 암스테르담,그리고 유럽의 수도역할을 하고있는 브뤼셀등을
그 후보지로 들고있다.

도시마다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으나 다국적기업들의 유럽본사가
이곳에 몰려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분석에 따른것이다.

이중 90년대들어 가장 인기를 얻는 지역은 단연 런던이다.

영국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활동으로 세계적 기업들이 이곳에
생산공장을 지으면서 런던에 유럽본부를 설립하는 업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유럽의 금융센터인 시티 오브 런던이 존재,싼자금을 조달하기가
용이하다는 점도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다 큰 장점은 고용조건이 유럽에서 가장 좋다는 사실이다.

노사분규가 적고 해고가 용이하며 법인세등 각종 세금부담도 낮은 편에
속한다.

임금수준은 독일을 100으로 할때 영국은 절반에도 미달하는 46정도에
불과하다.

영국정부가 외국본사를 끌어들이기위해 지원하는 각종 보조금도
만만치않다.

물론 영어권이란 점도 런던이 안고있는 매력중 하나이다.

KPMG가 최근 미국및 일본계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런던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는등 런던은 고용조건등 경영환경이 유럽에서 가장 양호한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러나 단점도 없는게 아니다.

우선 지리적으로 유럽대륙에서 고립돼있다는 사실이다.

2년여 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이 뚫려 고립정도가 다소
해소됐으나 여전히 유럽의 섬에 불과하다.

또 유럽통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자칫 유럽연합(EU)회원국이 누리는
통합시장의 장점을 상실할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브뤼셀을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EU의 본부가 있어 기업관련 각종 정보를 신속하게 접할수있고 로비가
용이하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맞대는등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있어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등 세계적인 기업의
유럽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반면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2개국어를 사용한다는 점, 국제도시의
특징인 물가가 비싸고 사회보장부담및 세금부담이 높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조가 거세고 EU본부가 있다는 이점이 사실보다 과대 평가돼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최대시장인 독일의 상업및 금융 중심지란 사실이
외국투자를 유인하는 최대 무기이다.

첨단 제조기술및 디자인기술을 손쉽게 얻을수있다는 장점도 갖고있다.

수준 높은 현지 관리자를 쉽게 확보할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UPS 부설 연구소가 유럽 1천5백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면성
리더십등 모든 면에서 독일인의 자질이 가장 뛰어난것으로 평가됐다.

그대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임금을 지급하고 엄격한 근로자 보호규정을
지켜야 하는등 열악한 고용조건을 감수하는 반대급부가 기다린다.

파리는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를 연결할수있는 지리적 이점,
국제기구와 산업협회들이 몰려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물가가 비싸고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성향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밖에 스위스는 정부규제가 없다는점등이 높이 평가되나 EU회원국이
아니라는 점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고 암스테르담은 아직은 유럽본부를
끌기에는 역부족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동구권 국가들의 EU가입에 대비, 장기적인 안목에서 헝가리 체코등에
본사를 두는 것도 고려해 봄직한 전략이란 견해도 있다.

이제 유럽내 우리기업들의 몸집이 커져 과거처럼 한국본사에서 이들을
관리하기는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

유럽 각국에 널려있는 생산 판매및 연구법인을 총괄하는 본사설립은
불가피한 현실이며 이를위해 다양한 변수를 신중히 분석,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슬기로움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관련, 주영국대사관의 유영상 상무관은 유럽본사의 위치는 그
주기능을 분명히 확정한후 결정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도시마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유럽본사의 사업목적에 맞춰
이를 결정하는게 최선책이란 뜻을 담고 있다.

실제로 유럽본부의 역할이 첨단기술및 디자인센터의 기능을 겸할때는
독일, 비즈니스 관련 정보입수나 로비활동이 주가되면 브뤼셀, 유럽내
지사및 본사와의 왕래를 중시하면 파리와 암스테르담이 비교우위에
있다는게 현지의 일반론이다.

또 "우리기업의 유럽본사가 런던등 지나치게 한곳에 몰리는것은 대외
이미지 관리상 좋지않다"는 이희범 EU대표부 상무관의 견해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