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 해태제과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나는 식품중에 가장 장사하기 까다롭다는 껌을 팔기 위해 중동과 동남아를
쏘다녔다.

일당 30달러로 밤비행기를 타고 공항 대합실에서 잠자기를 밥먹듯 했다.

동남아 수출길을 터보기 위해 싱가포르에 갔을 때였다.

중국 복건성출신 주사장과 약속을 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못 피워보던 양담배만 연신 태우고 있노라니 통역도 없이
주사장만 불쑥 나타났다.

얼떨결에 몇초간의 수인사와 생큐.

금방 나는 벙어리가 돼버렸다.

할 수 없이 메모지와 펜을 꺼냈다.

그리곤 나관중의 삼국지를 한문으로 풀어갔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주사장도 "씨야씨야"(그렇다)를 연발하며
동참하기 시작했다.

통역을 맡기로 했던 주사장의 친구 임선생은 "제갈공명"에 비유됐고 우리
거래의 기본 정신은 "도원결의"로 표현됐다.

경쟁사의 품목을 취급할 것에 합의하는 것은 "오월동주"로 나타내기도
했다.

방대한 역사소설이 한 껌장사에 의해 재조명됐던 것이다.

삼국지 속의 사건과 인물이 되살아나 적재적소에서 그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내 설명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던 주사장은 이제 나에게 중국식
표현을 가르쳐 주기까지 했다.

우리는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껌과 캔디의 상자당 가격 수량 선적시기 등을 결정짓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일사천리로 계약을 마치고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통역을 맡았던 임선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때.

와서 계약 내용을 살펴보곤 크게 감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내가 늘 해외영업을 하는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역사공부를
해두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따른 대처능력도 중요하고 유창한 언어구사나 세련된
매너도 중요하지만 해외에서 융통성있게 영업을 해나가려면 현지인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거래의 기본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다.

비단 돈 몇푼 더 벌자는 것만이 아니다.

젊은 시절 동서양을 넘나들며 그 삶의 지혜를 이해해두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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