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 달라"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면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그 이태리 가수의 노래는 얼굴을 알 수가 없어서 더욱 신비한 마력을
지닌다.

중년부인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 우선 눈을 감는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그의 정력적이고, 아니 너무 뜨겁고 야성적이어서
관능을 자극하는 그 목소리에 뿅간다.

옛날에 헤어진 애인을 그리거나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의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사랑에 빠진다.

이런 환상은 아무나 주는게 아니다.

공인수 박사도 "루치오 달라"의 노래를 들으면 아무 것도 생각을 안하고
그냥 정지한다.

각박한 모든 잡념이나 논리에서 해방되고 싶어지며 그의 야성에 허물어지듯
자기를 맡겨버린다.

그 상태는 모든 여자의 열락이며 쾌락과 비교되는 장미빛 환상이다.

그녀는 "루치오 달라"의 달콤한 CD를 끄면서 벽시계를 흘끗 쳐다본다.

20분쯤 쉬고 나면 다음 환자와 상담을 할 에너지가 다시 샘솟는다.

그것은 거의 불꽃의 점화와도 같은 휴식이며 일의 시작이다.

"다음 환자 들여보내요"

공인수 박사는 쾌적한 목소리로 간호원에게 수화기를 통해 말한다.

환자와 면담을 하는 진료실은 언제나 밀실처럼 꽉 막혀 있다.

음악을 듣는 시간은 환자와 면담을 끝냈을 때이고 음악이 끝나는 시간은
환자와 면담을 하고 처방을 주고 진지하게 병을 진단하고 분석해서 명쾌한
처방을 줄 시간이다.

"오늘 3시에 예약한 지영웅씨는 아직 안오셨구요. 처음 오신 환자분께서
너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들어가시도록 할까요?"

"좋아요"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하며 짜증을 낸다.

지영웅이란 환자는 정말 괴상한 건달이다.

그는 말하면서 자주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 주물럭거리며 떠든다.

잠시도 입과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일종의 정서 불안인 것도 같고 사이코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아직 미쳐
있지는 않다.

미치기 직전에까지 와 있는 고약한 놈이다.

첫째로 의사와 면담을 예약한 시간을 지키는 법이 없다.

그러나 요새 공인수 박사는 그 건들거리는 무뢰한에게 조금씩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다른 환자에게서는 흔하게 들을 수 없는 너무나 야한 고백을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의 추한 생활을 털어놓고 울기도 하고
호통도 치는 드물게 보는 야생마다.

아무튼 그만큼 생기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을만큼 쫙 빠진 몸매에 성적
매력이 넘쳐흐르는 외모를 가진 미남으로 기상천외하게 외설스러운 상담을
하는 압구정동 지글러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