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으로 새해 첫날 아침을 맞곤 한다.

새해엔 뭔가 달라지고 그건 아마도 좋은 변화일거라고 기대섞인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처지는 그렇지가 못하다.

몹시 불안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1997년 새해 아침을 맞는다.

경제가 걱정이기 때문이다.

1년전 이 순간 우리가 염려했던 것은 경제의 연착륙여부였다.

그건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안된다.

오늘의 화두는 불황과 위기다.

공황을 입에 담고 대량실업을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새해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는 진작부터 거의 모두가 동의해 왔다.

경기 사이클이 하강국면에 접어든데다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2월 대선도 경제에 큰 부담이다.

그런 터에 노동관계법의 변칙처리파동으로 노사관계가 껄끄러워져 장래가
더욱 불안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정작 걱정되는 것은 경제난이라든가 경제위기 자체
보다 아직도 정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
하지 못하고있는 현실이다.

정부의 입장으로 말하면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게 정확한 설명일지 모른다.

한국경제는 구조적으로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중병에 걸려 있다.

그동안 말과 구호만 요란했지 질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별로 달라진게 없다.

오히려 더욱 나빠졌다고 해야 한다.

단적으로 나타난게 다름아닌 2백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적자와 1천억달러가
넘는 외채다.

이것은 우리 경제 최대의 당면문제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경상적자가 얼마간 줄어들 것이라고 정부당국과 연구기관들은
예측한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믿게 해주질 못했다.

게다가 장차 수출이 수입증가율을 앞지를 거라고 볼 근거를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힘들다.

수출할 만한 물건은 갈수록 줄고, 수입은 저급 고급, 저가 고가품 할것
없이 계속 늘어만가고, 기업들은 너도 나도 해외로 나가는 판이 아닌가.

외채이자 부담에 환차손은 또 어떻고.

증시가 맥을 못추니 외국자본유입도 전과 같지 않을 셈이다.

어려운 상황은 상당기간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

워낙 심각한데다 98년에는 새정권 출범이후의 과도기적 불안정을 또
계산해야 한다.

올 하반기부턴 회복될 것이란 희망적 예측에 현혹되지 말 일이다.

더 나빠질 위험이 있다.

정부 기업 근로자 모두가 위기의식과 함께 위기극복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집단, 특히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대권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열기는 갈수록 더할 것이다.

그러면서 관료집단은 복지부동하거나 줄서기에 바빠질 것이다.

경제는 뒷전으로 밀리거나 정치논리에 눌려 정책과 실물 모두가 뒤틀어질
가능성이 많다.

그런 우려는 올 한해로 끝나지 않는다.

대선 6개월 뒤에는 4대 지방선거가 또 기다리고 있다.

경제의 어려움은 이래저래 깊어갈 판이다.

정치가 경제에 완전 중립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국민이 잘 살게 하자는게 정치니까.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경제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짐이 안되는 정치를 해야 하고 둘째는
국민의 욕구와 기대수준을 정치가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해 줘야 한다.

다가올 선거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또 동원될까.

그것은 필시 거의가 기업의 준조세부담으로 조달될 터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한층 짓누르게될 것이다.

여고 야고 진정 돈안드는 정치,돈안쓰는 선거 창출에 나서야 한다.

집권욕과 표에 눈이 멀어 국민에게 허황된 꿈을 심고 국민의 욕구와 기대
수준을 무한정 부추기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정치의 역할도, 21세기를 열어갈
정치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국민은 또 집단이기와 지역이기를 현명하고 과감하게 조절하는 정치인과
정치력을 갈망한다.

관료들은 지난날의 경제개발 주역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다.

잦은 선거, 잦은 개각,빈번한 조직개편과 인사로 자리는 불안정해지고
정치의 입김은 강해졌다.

정치가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 관료집단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소임에 충실할수 있어야 한다.

새해 경제가 살고 못살고는 뭐니뭐니해도 기업과 근로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법파동이 오래 끌어서는 안되고 임단협상때까지 연장돼서는 더욱
안된다.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할 일은 근로의욕, 우리 국민의 일에 대한 열정이
식은 현실이다.

모두가 놀고 쓰기에 바쁘고, 일 않고 편히 사는 방법에 몰두하는 사회풍조가
만연돼 가고 있다.

근로와 무관한 복지의 확대대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보다 많은 보상이
가게 해야 한다.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열과 성을 다하고 그래서 질과 효율이 높아져야 한다.

사람 말고 우리가 가진게 뭔가.

고비용-저효율의 극복도, 우리 경제의 앞날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기술
개발과 혁신도 모두 사람,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도 느느니 외국인노동자뿐이고 해외탈출 외엔 기업투자의 대안이
없는듯한 현실이니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근로의욕 기업의욕을 되살려야 한다.

노사가 단결하고 협력해서 산업현장, 제조업에 다시금 활기가 넘쳐야 한다.

그런 분위기속에 저축이 늘고 투자가 활발해져야 한다.

정치와 정부는 짐대신 힘이 돼줘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이 후회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