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지난 26일 새벽 노동관련법이 국회에서 전격
통과됐다.

노동관련법이 꼭 금년내에 통과됐어야 했는지, 개정내용이 너무 사용자
측에 치우지지 않았느지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은 단순히 노동관련법만을 들여다보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이로인해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산업구조가 급번하며 새로운
기술이 속속 쏟아지고 있다.

소위 앞서가는 나라들일수록 이러한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경쟁력 향상을
최우선의 정책과제로 올려 놓고 있다.

미국이 그렇고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이 그렇다.

선진국외에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지아가 또한 그러하다.

세계시장에 자신있게 내놓을 변변한 상품이나 서비스 하나 없는 우리는
어떤가.

대북관계는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비수처럼 우리의 목을 겨냥하고 있고
정치권이나 관료조직은 경쟁력 항상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발목을 잡고 있다.

경쟁력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나오는 정책은 구태의연하고 실행력은 더욱 떨어진다.

기업이나 국민들도 전반적으로 현실에 대한 안이한 인식, 책임전가, 소아
적인 이기주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우기 세계적인 순항에도 불구하고 국내경제는 고비용-저효율 체질의
한게가 드러나면서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취약점에 대한 인식이 절박한 위기감으로
연결되지 않는한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이 모아지지 않는한,
우리경제는 상당한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기간 동안 실질소득의 하락내지 정체, 대량실업사태,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외채가 결코 기우가 아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관계법 개정은 이러한 큰 틀 흐름에서 볼때 꼭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단순히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빵의 배분 문제가 아니다.

빵공장이 문을 계속 열고 번창하느냐 빵공장이 주저앉느냐 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웃에는 빵공장이 계속 들어서고 있고 각 공장이 좋은 빵 만들기와 손님
끌기에 심혈을 기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기만 따진다면 노동관련법이 꼭 금년내에 통과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여-야간, 노-사간에 내년초까지 원만한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최근 1년에 가까운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활동을 돌아보거나 현재의 여-야
관계, 노-사관계, 내년의 정치일정, 현재 우리경제가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합의에 의한 통과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개정안의 내용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합의점을 도출하기 보다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논쟁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노동관계법의 내용에 대해서는 노사양측 모두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된 내용이 노사 어느쪽으로 기울었느냐 하는 문제보다, 과연
경제원리에 충실한 방향으로 개정되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

시장경쟁원리에 충실한 경제운용이 경쟁력 향상의 지름길이며 노동시장은
시장경쟁원리에 보다 가까이 가야할 시급한 부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차적으로 정부와 기업은 상실감을 느끼고 불안해할 근로자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이들을 위해 최소한 다음의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복지를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저소득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위한 재정.금융지원, 실업자를 위한 재교육
강화, 소규모 창업활성화 대책마련, 접근하기 용이한 구인.구직정보시스템의
구축 등이 예가 될 것이다.

둘째 기업측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최대쟁점 사항인 정리해고 등을
악용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가장들의 실의와 아픔을 생각
해야 한다.

감원 등은 투명하고 일관된 원칙을 따라야하며 부득이한 경우에 한정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정된 노동관련법을 노측이나 사측이
악용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빠른시간내에 보완하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관련법의 전격적인 국제통화로 당분간 노사관계는 대결구도로 접어
들고 이로인해 우리경제는 진통을 겪게 될 것이다.

노동법 개정안 자체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물론 새로운 법안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이견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결구도가 강하고 오랠수록 우리경제는 더욱 심하게
흔들리며 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노동계도 "지금의 내몫"이 아니라 "내일의 내몫"과 국가의 장래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