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난 업체가 다행히 법정관리를 받게 되더라도 회생하는 비율은 10%도
안된다.

그 이유는 법원의 부도기업에 대한 재기가능성 오판, 구사주의 영향력 행사,
사후 자금관리 실패 등 갖가지다.

특히 법정관리인의 역할은 재기의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요소이다.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 법원은 경제단체의 추천을 받은 경륜있는 사람을
관리인에 우선적으로 선임하고 있다.

한양공영의 김종주 관리인(69)은 바로 경총 고급인력정보센터의 추천을
받은 케이스다.

김관리인은 법정관리 업체였던 홍진기연을 맡아 8년 연속 흑자를 낸 경험을
바탕으로 유별나게 어렵다던 한양공영을 4개월째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 법정관리 기업의 지침과 회생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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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사람 = 문병환 기자 ]

-한양공영 관리인에 선임된 배경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지요.

"지난 7월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법정관리업체를 살리고 퇴직자들에게
재취업을 알선하는 방편으로 고급인력정보센터를 설립했어요.

이때 제가 가장 먼저 취업신청서를 냈습니다.

때마침 경총에 몇몇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인 의뢰가 들어왔다기에 가장
힘든 회사를 골라달라고 부탁했지요.

이래서 9월20일 한양에 오게 됐습니다"

-관리인 부임당시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올 6월이후 41일간 파업의 후유증이 상존하고 있었어요.

마치 한국전쟁무렵의 서울수복후 상황 같았어요.

노조간부를 비롯한 일부 근로자들은 저를 봐도 인사조차 하지 않더군요"

-수습하기가 꽤 힘들었겠군요.

"신뢰회복이 급선무란 생각이 들더군요.

우선 노사문제가 심각한 창원공장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자면서
동고동락키로 했지요.

근로현장에 뛰는 것이 제 취미이고 조합원들과 어울리는 것이 특기인 처럼..

인천공장에 있으면서 수시로 창원에 내려가 근로자들과 얘기하고 노래하고
술을 마셨지요.

2시간 동안 쉬지않고 함께 춤출 때도 많았고요.

격의없는 대화를 위해 선의의 "상소리"도 해댑니다.

자연히 교감이 이루어지더군요"

-이제 노사화합이 이루어졌다는 얘기인가요.

"지금은 노조간부들도 저를 찾아와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요.

발전적인 노사관계가 어느정도 구축됐다고 봅니다.

저자신도 철저히 "열린 경영"을 실천하려 합니다.

파업의 아픔을 극복하고 상호간 신뢰도 돈독해졌어요.

대화를 통해 불평불만을 하나하나 해소했던 것이죠.

직원의 상가에 문상을 가고 현장을 다니며 심야.새벽근로자들을 격려했던
탓인지 근로자들의 마음도 변화된 것 같아요"

-노조가 회사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노조 예찬론자입니다.

노조는 반드시 있어야 해요.

노조의 목표가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회사발전을 위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경영진이 노조와 협력 관계를 이루면 회사의 성장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이지요"

-한때는 남들이 노른자위라고 하는 세무공무원까지 지내셨다면서요.

"저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어요.

21세때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55년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재무부 관재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국세청 세무.조사국을 비롯해 소위 노른자위를 거쳤어요.

그러나 솔직히 나이 학력으로 봐 세무서장까지는 못할 것 같아 제2의
인생을 살기위해 세무공무원을 그만뒀습니다"

-그후 개인 사업을 한 것이군요.

"돈이 없어 사업다운 사업은 못하고 퇴직금 포함, 3백30만원으로 행상을
시작했지요.

양손에 선풍기 다리미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녔죠.

77년 엿장수하던 무렵엔 눈물을 삼킨 적도 많았어요.

한번은 양손에 엿통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차장이 엿통을 보고
태워 주지 않는 거예요.

다음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는 아예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더니 태워
주더군요.

당시 저는 공무원 습성을 벗으려고 4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10년동안 넥타이를 매지 않고, 택시를 타지 않으며, 구두를 신지 않고,
다방 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개인 사업은 번창했습니까.

"보따리 장수 2년만에 서울 을지로에 조그마한 지업사를 차렸지요.

거래처를 확보하려고 상인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셔 대던 나날이었어요.

술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더군요.

결국 종이 파는 일을 2년만에 끝냈죠.

그즈음 과거 재무부 국가소송 대리인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판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부도난 동보전기의 법정관리인 대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죠.

2년간 그회사 기획실장으로 일하다 지난 84년1월 크레인업체인 홍진기연의
법정관리인이 된 겁니다"

-홍진을 맡아 8년만에 기업을 완전 정상화시키고 회장까지 지내셨다면서요.

"부임 첫해부터 8년간 흑자를 냈지요.

그덕분에 법정관리 만기 9년중 1년을 앞두고 회사를 정상화시켰어요.

열심히 뛰어 8년간 뜻한 바는 다 이룬것 같아요.

종업원 월급도 빠뜨리지 않았고요.

신용도가 널리 알려졌을 정도였으니까요.

한번은 은행 지점장과의 약속시간을 지켜야겠는데 도로가 막혀 자동차에서
내려 마라톤을 한적이 있어요.

좌초지종을 알게된 그 지점장이 감동해서인지 "이런 분에게 돈을 빌려
줘야지"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하더군요.

지난 89년에는 노사분규가 발생, 근로자들이 공장벽에 저를 욕하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이때 저는 하루종일 담벼락 밑에 꿇어앉아 참선을 해 근로자들을 공장안
으로 끌어들였어요.

홍진이 회생한후 저는 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별 하는일 없이 월급만 받는
것이 싫어 그 회사를 나왔습니다"

-부도난 회사들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것 같은데요.

"기업경영은 생물장사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생물이 변해 퇴물이 되면 돈을 줘 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잘 될 때는 모르나 간수를 잘못하다 부도 나면 끝입니다.

잘된다고 흥청망청 비용을 낭비하다가는 순식간에 좌초되고 말지요.

때문에 최고 경영자의 정신과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겁니다"

-관리인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겠군요.

"관리인 선임은 신중해야 합니다.

사주의 친인척이나 친구 등 순종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은 곤란합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사심없이 동분서주 활동할수 있는 사람만 관리인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소생한 기업의 소유권문제도 요즘 입법부등에서 거론되는 걸로 아는데요.

"법정관리에 있던 기업이 정상화됐을 때는 절대로 사주에게 환원돼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업체는 국가나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체로 변해야 하는 게 이치지요.

이를 위해선 구 사주 주식의 완전소각이 필수적입니다.

회사정리법이 이런 방향으로 개정돼야 하는데 정부 관련당국에 이분야의
전문가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양공영은 올해 흑자를 실현하면서 안정국면에 접어들었다면서요.

"지난 94년 주택공사에서 인수한 이후 자금지원과 함께 대량구매를 해주고
있어 더욱 실적이 좋아요.

크레인의 경우 연평균 50~60대 팔리던 것이 올해에는 2백여대나 판매됐어요.

이에 힘입어 올해에는 매출 8백억원 순익 10억원을 올릴 전망입니다.

법정관리 2년 남짓만에 흑자기업으로 전환한셈 입니다"

-한양 이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도기업을 맡고 싶은가요.

"한양공영을 그만두면 남이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법정관리 업체를 맡아
한번만 더 관리인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허락한다면 저의 경험을 담은 책자를 발행하거나 기업체등에 강의를
해 참된 기업상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마라톤에 남다른 애착과 실력을 갖고 있는 걸로 압니다.

"지업사를 하던 당시 건강 때문에 마라톤을 시작했지요.

생각해보니 돈 안들이고 내 멋대로 할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다 싶더군요.

당시엔 황당한 생각도 했지요.

10여년간 노력해 88년 올림픽때 마라톤 풀코스를 1등 하면 60세 이후의
노후문제도 해결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시속 20km 속도의 차를 2시간5분동안 따라가기만 하면 할수 있다고
판단했던 거지요.

그런데 3년만에 사업과 관련된 현실등을 감안, 그 꿈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88년 제21회 세계노인마라톤 대회에서 4시간 25분29초로 완주한
것으로 위안을 삼지요.

마라톤은 곧 제 인생입니다.

저는 100살 까지는 노동력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건강이 뒷받침돼야 하고 따라서 100살까지는 마라톤을 할 작정
입니다.

마라톤을 하지 않고선 지금의 관리인 업무도 할수 없을 테니까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