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 이벤트회사에서 주최한 라디오 공개방송 행사장에서 서로 먼저
입장하려는 청소년들의 소란으로 두명의 중학생이 사망하고 여러명이
중경상을 입은 참사가 또 발생했다.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대중음악 스타들이 출연하는 공개행사도 하나의
문화행사라고 한다면 참석자들이 입장질서를 지킬줄 아는 최소한의
문화의식은 지녔어야 했다.

관람질서조차 지킬줄 모르는 문화행사라면 그것은 겉치레만의 문화적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상 음악회나 경기장을 찾는 많은 청소년들중에는 음악을 감상하거나
운동경기를 관전하는 것은 뒷전이고 그들의 우상인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환호를 보내고 열광하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문화가 아니라 "우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적 이벤트들중에는 그와같은
청소년들의 우상추구 심리와 무엇인가에 열광하려는 표출적 욕구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상업적 동기를 문화의 이름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들은 우상을 좇는 그들의 문화적 이벤트가
"비문화적"이라고 하는 비판을 쉽게 수용하려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문화적 이벤트들이 더욱 더 "비문화적"
이라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화환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초대손님들로 가득찬 성인들의 발표회나
연주회에 참석한 청중들중에는 "고급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참석했다기
보다는 친지와의 안면을 고려해서 억지로 참석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문학상들중에는 끼리 끼리 나누어 가지는 상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가 하면 그나마 연극공연장을 찾아주는 연극애호가
대부분은 어른들이 아닌 젊은이들이 아닌가.

거의 매일 열리다 시피 하는 수많은 세미나들도 실속없기는 마찬가지다.

동원된 청중들이 자리를 메우고 발표와 토론의 내용보다는 행사장면의
사진이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데 더 신경을 쓰는 이벤트성 세미나들과
국제회의들이 너무 많다.

청소년들이 문화적 이벤트를 통해 우상을 만들고 스스로 열광하는
표출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성인들은 주로 "기호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성공한 사람들의 계층에 속한다든지, 국제화된 문화감각을 지닌
문화적 공중에 속한다는 식의 과시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속물적 문화
의식을 가지고 문화적 이벤트를 벌이고 참가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벤트일수록 알맹이 없는 겉치레 문화로 화려하게 포장되는 것을
많이 볼수 있다.

우리 사회의 이벤트성 겉치레 문화현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광고와 화보등으로 가득차서 들고 읽기에도 무거울 정도인 호화로운
여성잡지들이나, 깊이 있는 사상이나 예술성으로 독자를 사로잡기 보다는
독자들의 얄팍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더 충실한 일부 베스트 셀러들도
알맹이없는 겉치레 문화현상이라고 할수 있다.

잘 안팔리던 책들이 제목만 그럴듯 하게 바꾸어 새로 내면 베스트 셀러로
둔갑하는가 하면 심지어 대학의 학과 명칭도 과학 정보 관리 경영 문화 등의
단어들을 덧붙여 개명을 하면 지원생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겉치레
문화현상일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보드리아르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상품의 실질가치보다는 기호가치에 비중을 두는 소비행태를 보인다.

그가 말하는 기호가치란 사회적 지위, 현대성, 성적매력, 문화적세련성
등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차이"를 나타낼수 있는 상품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많은 상품광고들은 그와같은 기호가치를 선전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와같은 기호가치에 의한 상품의 소비행태는 문화상품의 경우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후기산업사회의 많은 문화수용자들은 문화상품이 지닌 창조적 가치나
실질가치보다는 기호가치를 좇아 문화상품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결혼식이나 회갑연과 같은 가족행사, 동창회나 동향인들의
모임같은 친목단체의 행사,심지어 종교적 행사들까지도 겉치레문화로
포장된 이벤트성 행사로 치러지는 것을 많이 볼수 있다.

특급 호텔 연회장에서 연예인들이 사회를 보거나 가수가 출연해서
흥을 돋우는등 겉치레 문화가 곁들여진 행사들은 갈수록 고급화하고
호화스러워지고 있다.

그와같은 행사들이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겉치레만
요란한 이벤트성 행사에 치우치기 쉽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고급호텔의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곁들여 프랑스 요리를 먹는다고 해서
문화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겉치레 문화 이벤트를 많이 벌이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들의 의식과 감성의 깊이가 더해지고 도덕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창조적 문화의 수용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문화가 없는 문화 이벤트, 사상이 없는 베스트 셀러, 신앙이 없는
교회, 참된 교육이 뒷전으로 밀리는 학교, 봉사보다는 사업에 더 관심이
많은 사회사업단체등 온갖 겉치레 문화현상들이 사라지고 조용하지만 알찬
문화로 채워진 참된 문화의 창조자들이 더 많아져야 우리도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할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