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서 <미 파슨스브링커호프사 책임감리사>



한국도 지진을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언론의 반응은 단지 놀랍다는 것일 뿐,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최근들어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이 비교적 경미한 규모이기는 하나
발생이 잦은 점으로 볼 때 지진에 관한 한 한반도도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나 국민 모두가 깨달아 예기치 못할 엄청난
피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등 선진국에서의 지진에 대한 대책은 한국에서의 지진대책을
수립하는데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89년 캘리포니아주 지진 발생 후 국립과학기초회(NSF)와
연방정부 소속 기관들이 "국립지진위험감소프로그램(NEHRP)"을 결성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500만달러 이상이 지진 연구비에 투자됐으며
이 연구를 통해 구조물의 내진설계와 연약지반 내진 대책이 마련됐다.

특히 지난 93년 한해에만 미국내에서 지출된 지진 관련 연구비 및
활동비는 무려 9,30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에서는 지난 10여년간 생명선공학(Lifeline Engineering)이라는
분야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국가 정책 수립에 기초가 되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지진 자체에 의한 피해못지 않게 가스라인과 전기라인, 소방진화라인등
생명선의 파괴에 따른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은 캘리포니아
지진 및 일본 고베 지진에서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지난 89년 이후 미국내 모든 교량에 대한
내진설계 점검이 실시된 적이 있다.

이때 내진설계 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 4,000여개의 주 정부 소유
교량과 1,500여개의 군소도시 교량에 대해 현재 우선 순위에 따라
보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고베 지진과 캘리포니아 지진에서 알 수 있듯이 큰 지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지만층은 발생확률로 볼 때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진 다발지역과는 다른 피해 양상을 보이는게 사실이다.

즉 적은 규모의 지진이라고 하지만 지각 운동 시 에너지 전달이 지진
빈발지역보다 빠르고 광범하게 확산될 수 있으며 특히 중요 시설물에 대한
내진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다른 지진 빈발 지역과는 달리 강진의 경험이 없고
지진 발생도 비교적 적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한국 내 대도시들은 인구가 밀집돼 있고 큰 지진 경험이 없으며 중요
시설물에 대한 내진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세계의 대도시들은 이같은 점을
인식해 현재 대규모 건축물은 물론, 교량 등 대중이 자주 이용하는 시설물에
대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는 등 지진에 대비하는
노력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에따라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물에 대한 내진여부
검증 등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에서 지난 94년 발생한 노스브리지 지진과 95년 고베 지진을
놓고 볼 때 가장 큰 패해를 본 것으로 보고된 교량과 철교가 한국 내에도
많은 점을 고려해야한다.

이들에 대해 내진성을 조사하고 상부 및 하부구조에 대한 지진 보강
작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일본 고베의 경우 지난 81년 이후 새로운 내진설계에 따라 건축물이
지어졌기 때문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진설계에 따라 신축된 건축물
피해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고됐다.

한국에서는 지금 지하철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내진설계를 동원했다는 고베의 다이카지하철과 고베지하철시스템이 지난
지진으로 일부 피해를 본 점을 감안한다면 강진이 엄습했을 때 한국내
지하철의 사정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핵발전 시설물과 핵폐기물 보관시설이 내진설계 규정에 맞는 지를 전면
재조사하고 설계보강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현재 지진 다발지역에서의 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이와 함께 댐, 항만, 공항 등 공공 시설물에 대한 보호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특히 생명선으로 통칭되는 상.하수도망, 교통시설물, 전기, 도시가스,
액화연료수송라인, 통신시설 등에 대한 내진설계 도입과 위치파악 및
관리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는지, 그렇치 않다면 시급히 보강하는 작업이
조속히 진행돼야 할 것이다.

지진에 취약한 문화재 시설에 대한 보호 방법도 아울러 모색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진 방지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지원, 감시, 감독이 절실하다.

특히 지진 전문인력 내진 구조물 설계 전문인력 등을 양성하고 이를위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실시공과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그동안 삼풍백화점이 붕괴됐고
성수대교가 내려 않는 뼈아픈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이같은 아픈 상처를 또다시 안겨주지 않는 것이 정부 당국과
건설종사자들의 의무이다.

적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대도시에서 발생했을 때에는 예측을 불허하는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